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문수(朴文秀)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501931
  • 전몰일자 : 19530112

공훈사항

박문수 일등중사는 1926년 11월 29일에 경상북도 영일군 구룡포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북한군의 최후공세를 힘겹게 격퇴하던 시기인 1950년 9월 초순, 경남 삼랑진의 육군 제6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제11사단 제20연대로 배치되었다.
박문수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20연대는 9월 25일 제6훈련소 병력을 모태로 재창설되었고, 8월 27일 영천에서 창설된 제11사단에 예속되었다. 연대는 10월 초순에 광주지역으로 이동하여 지리산 서남쪽 지역에서 공비토벌작전을 실시했다. 연대는 1951년으로 접어들면서 회문산과 백아산 일대에서 중대 규모 이상 단위로 활동하던 게릴라들을 대대적으로 소탕하여 세력으로서의 활동을 완전히 소멸시키는 데 성공했다.
제11사단은 4월 6일에 공비소탕작전 임무를 제8사단에 인계하고, 4월 중순에 동해안 양양으로 이동했다. 이후 사단은 4월 22일부터 시작된 공산군 4월 공세와 5월 16일부터 시작된 공산군의 5월 공세을 맞아 대관령-강릉 선에서 적의 진출을 저지했다. 이어 5월 22일부터 강릉-양양-향로봉(간성)-건봉산 방향으로 반격하여 6월 10일에 건봉산을 좌우로 잇는 선까지 진출했다. 이후 쌍방 간에 휴전 협상이 진행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 진행되었다.
이후 제11사단은 휴전 협상을 촉진하기 위한 유엔사의 작전방침에 의거 향로봉 북쪽의 884고지를 탈취하기로 하고 8월 18일부터 제9연대가 공격했으나 실패하고, 27일부터 신상문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20연대가 공격하여 29일에 성공적으로 탈취했다. 이후 몇 번의 부대교대를 거쳤고, 박문수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20연대는 1952년 4월 15일에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이동하여 7월 11일까지 포로경비 임무를 수행하고 건봉산 방어지역으로 복귀했다.
제11사단 전선에서는 별다른 전투 활동은 없이 소강상태 계속되었다. 이에 사단 장병들은 방어진지 보강과 수색작전에 집중했다. 박문수 일등중사가 소속된 중대는 1953년 1월 12일에 수색작전을 나가 적 침투조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로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소대선임하사로서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문수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46327육)을 추서하고, 그의 위패(23판–3면-921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4-ㄷ-00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