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문수(朴文洙)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34272
  • 전몰일자 : 19510423

공훈사항

박문수 일병은 경상남도 울산군 하상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6·25전쟁 발발 이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조국이 다시 위기에 처하자, 그는 나라를 구하고자 일어섰다. 박 일병은 1950년 12월 하순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5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후의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신정 공세에 밀려 37도선 일대까지 철수했고, 사단은 영월 일대에서 북한군 제2군단과 공방전을 벌이던 상황이었다. 2월 11일 개시된 중공군 제4차 공세(2월 공세) 때, 연대는 16일 북한군 제2군단의 집중 공격을 받고 평창 일대를 내주고 후방으로 후퇴했다. 적은 계속해서 영월을 점령하려고 기도했으나, 연대는 17~18일 양일간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의 공격을 저지했다.
유엔군의 킬러작전(2. 21.~3. 6.) 때, 연대는 평창-창동리 도로를 따라 공격하여 평창군 백석산 일대까지 진출했다. 유엔군의 리퍼작전(3. 7.~3. 31.) 때 연대가 소속된 제3군단은 조공으로 공격했고, 연대는 3월 6일 하진부리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다. 연대는 강원 평창군 백석산과 백적산 일대에서 북한군 제27사단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3월 12일 하진부리를 점령하여 경강국도를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연대는 지역 내 잔적을 소탕하면서 속사리-창촌-현리 방향으로 계속 진격하여 3월 하순에는 현리 일대까지 진격하여 적과 대치했다.
4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고, 연대는 공격을 전개하여 4월 22일 인제군 원통 일대까지 진출했다. 이때 중공군은 제5차 공세(4월 공세)를 시작했고, 제5연대는 4월 23일 제5사단에 배속되어 방어로 전환했다. 북한군 제6사단은 제5연대와 제3사단 제22연대의 전투지경선을 집중 공격했다. 연대는 격전을 벌이면서 분전했지만 측방이 노출되면서 전투력의 열세에 밀려 인제 서남방의 부평리, 소재 일대까지 후퇴했다. 이 전투에서 박 일병은 끝까지 진지를 지키며 용감하게 싸우다 4월 23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문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52-ㅌ-03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