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문선(朴文善)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166044
  • 전몰일자 : 19520423

공훈사항

박문선 하사는 경기도 김포군 양동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조국이 다시 위기에 처하자 일어섰다. 박 하사는 1950년 12월경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2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으로 철수하고 있었고, 제3사단은 12월 10일 흥남에서 해상철수하여 구룡포에서 정비 중인 상황이었다. 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12월 31일 중공군은 제3차 공세를 감행했고, 이때 연대는 북한군 제10사단의 집중공격을 받고 평창으로 철수했다. 1951년 2월 11일 중공군은 제4차 공세(2월 공세)를 감행했고, 연대는 횡성의 섬강 일대에서 중공군 제197사단과 혈전을 벌였다. 이후 국군은 공세로 전환하여 3월 7일부터 리퍼작전을 전개했고, 연대는 제3군단에 배속되어 3월 말 현리 일대까지 진출했다.
4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다. 연대는 4월 22일 시작된 중공군 제5차 공세(4월 공세) 때 인제의 한석산, 가리봉 일대에서 북한군 제6사단을 물리쳤다. 5월 16일 중공군 제5차 공세(5월 공세) 때 연대는 사단의 유일한 보급로인 오미재 고개가 차단당한 가운데 적진을 뚫고 방태산을 넘어 하진부리로 철수했다.
현리전투 결과로 5월 25일 제3군단이 해체되고, 제3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연대는 양양, 고성 일대에서 10월 19일까지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했다. 사단은 10월 20일부로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양구 동북방의 가칠봉 일대로 이동하여 제5사단 진지를 인수했다. 연대는 가칠봉 북서방의 1,211고지를 두고 10월 27일부터 31일까지 북한군 제13·2사단과 공방전을 펼쳤다.
사단은 1952년 1월 12일 미 제9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백석산 서북방 임남 일대의 북한강~739고지~949고지~석장리 간의 제6사단 진지를 인수했다. 4월 5일 재창설된 제2군단이 미 제9군단의 전선을 인수함에 따라 사단은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고, 9월까지 큰 전투 없이 현 전선을 유지했다. 박 하사는 4월 23일 적의 소규모 부대가 침투하자 분대원을 이끌고 앞장서서 용감하게 적을 무찌르다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문선 하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9105 육)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28-ㄲ-02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