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문배(朴文培)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9527637
  • 전몰일자 : 19520416

공훈사항

박문배 일병은 1933년 5월 15일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4월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작전을 준비하던 1951년 5월 중순 김해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수도사단에서 배치되었다.
박문배 일병은 향로봉지구 전투에 투입되었다. 수도사단은 1951년 6월 3일부터 12일까지 향로봉지구 전투를 실시하여 940고지를 점령하였다. 이어 8월 18일부터 23일까지 미 제8군의 작전에 참가하여 서화리 동북방의 924고지를 점령한 사단은 10월 12일부터 15일까지 북한군 제19사단으로부터 월비산을 탈취하는 전과를 거두고, 11월 26일 여수로 이동하여 호남지구에서 공비소탕 작전을 전개하였다.
후방지역 공비소탕 작전은 백야사작전(白野司作戰)의 일환으로서 미처 철수하지 못한 북한군이 패잔병이 되어 지방공비들과 합세하여 지리산, 소백산 등 심산에 은거지를 구축하고 후방지역 교란 활동과 병참선을 파괴하는 등 제2전선을 형성하여 민폐를 끼치자 전선에서 군단급 병력을 차출하여 대전 이남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공비토벌 작전을 실시하였으나 공비들의 수는 날로 증가하여 후방치안의 확보가 점차 어려워졌다.
1952년 초반까지 쌍방 간에 합의되었던 임시휴전선이 백지화됨에 따라 회담의 추이를 지켜보는 가운데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고 있었다. 당시 수도사단은 후방지역 공비들의 수가 급속도로 증가하여 후방치안의 확보가 점차 어려워지게 됨에 따라 이들을 소탕하기 위하여 1952년 2월부터 백아산, 모후산, 조계산 지구에 대한 소탕 작전과 반복 수색을 전개하였다. 박 일병이 소속된 사단은 호남지구 공비소탕 작전을 마친 후 4월 5일부로 제2군단에 배속되어 금성 방면 작전을 수행하였다.
박 일병은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언제나 선두에 서서 용맹을 발휘했던 박문배 일병은 1952년 4월 16일 금성 부근에서 반복 수색을 벌이던 중 매복해 있던 북한군의 기습사격을 받아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문배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6-ㄴ-00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