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문달(박문달)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22417
  • 전몰일자 : 19510214

공훈사항

박문달 일병은 출생 기록이 없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대한민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11월 27일 입대하여 부산에 위치한 육군 제2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통신대로 배치되었다.
박문달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북진을 계속하던 유엔군과 국군은 중공군의 두 차례에 걸친 기습공격에 의해 후방이 차단되어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하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1950년 12월 5일경에 전방지역으로 투입되어 17번 국도상의 춘천 지역에서 철수하는 부대에 대한 평양-춘천 간 도로의 동측방 엄호작전을 실시한 후, 12월 13일부터 춘천 북방 38도선 일대의 전선 방어(탑두울-배후령)에 투입되어 방어편성을 하고 있었다.
사단은 1951년 1월 1일 새벽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받아 후방을 차단당하고, 1월 2일 밤에는 적들에게 포위가 되었으나 포위망을 돌파하여 가평을 거쳐 문막 동쪽으로 이동하여 방어 배치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북한군 제10사단 병력들이 제천-단양-안동까지 후방 침투하여 위협하자 사단은 문막 일대에서 제천-영월로 이동하여 방어 배치를 전환했다.
박문달 일병이 소속된 제5사단은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저지한 다음 2월 5일부로 홍천 포위 공격을 개시했다. 계속해서 사단은 2월 9일에 적 주력이 4일 동안 완강하게 저항하던 방어거점인 317고지-412고지-247고지를 돌파하고 섬강 남쪽으로 진출하여, 북한군 제6사단의 지휘소가 위치한 포동리를 점령했다.
이어서 사단은 홍천 우측방의 목표 점령을 앞둔 2월 10일에 대규모 중공군의 기동을 확인하고 야간 방어로 전환했다. 마침내 2월 12일 아침 사단은 중공군의 2월 공세를 받고 방어진지에서 철수를 개시하였으며, 점령하여야 할 원주-평창선보다 남쪽으로 계속 철수하여 제천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강원도 영월군 주천리 일대 새로운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중공군은 2월 14일 이후부터 국지적인 탐색전만 전개하며 2월 16일까지 재공격을 실시하지 않았다. 박문달 일병은 중공군 2월 공세로 철수작전 시 2월 14일 횡성 일대에서 분대원과 함께 후발대로 유선 회수 중 적 포격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문달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23판-32면-17182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4-ㅇ-018)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