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문년(朴文年)

  • 군별 : 해병
  • 계급 : 대위
  • 군번 : 60102
  • 전몰일자 : 19530420

공훈사항

박문년 대위는 전남 신안군 안좌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1950년 11월 13일 제주도 해병대 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 군사훈련 과정을 마친 후 1951년 6월 13일 해병대 서해부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전황은 공산군과 유엔군이 휴전협상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좀 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상태에서 휴전을 맞이하기 위해 지리한 공방전을 거듭하던 상황이었다. 백령도에는 이미 1951년 4월 23일부터 독립 제41중대 병력 약 100명이 상륙하여 사곡동에 본부를 두고 100고지를 중심으로 도서를 경비하고 있었다. 이곳에는 미 육군 항공부대 87명, 한국 육군 정보원 20명, 목포부대 80여 명, 경찰관 8명, 유엔함정과 한국 해정함정이 함께 경비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서해부대는 15명의 정찰대를 편성하여 평안남도 한천 남양리에 잠입하여 적정을 파악하고 돌아왔다. 6월 27일에는 20명의 정찰대가 애도(愛島)와 정주군 갈산면에 상륙기습작전을 감행하여 적 15명 사살, 애국청년 16명 구출, 적 탄약고 1개소를 폭파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 후 7월 26일부터 9월 20일까지 도서부대 작전을 통하여 적 36명 사살, 애국청년 200명을 구출하는 등 커다란 전과를 거두었다.
1951년 10월 서해부대에서 제1연대로 배속이 전환된 박 대위는 월산령지구 방어작전에 참가했다. 1952년 3월 17일까지 방어작전을 실시한 후 연대는 서부전선인 장단·사천강지구로 기동했다.
제1연대가 주둔하고 있는 장단·사천강 지구는 경기도 문산과 파주에 접해 있고 서울과 이어져 있어서 서울의 관문인 개성-문산 축선을 지키는 데 아주 중요한 곳으로 1952년 4월부터 이듬해까지 전초진지를 두고 피·아 간 뺏고 빼앗기는 전투가 계속 반복되었다.
1953년 4월 20일 박 대위는 정찰대장으로서 1개 소대규모의 병력을 지휘하여 39고지 일대에 대한 정찰작전을 실시했다. 그때 매복 중이던 적과 교전이 벌어져 치열한 전투 중 적의 집중사격을 받고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문년 대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2-ㄷ-09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