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문규(朴文圭)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3500489
  • 전몰일자 : 19501029

공훈사항

박문규 일등중사는 충청북도 단양군 어상천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박 일등중사는 1949년 10월경에 입대 후 제8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박 일등중사의 부대 전입 후 제8사단은 1950년 4월 22일까지 무장공비토벌 작전을 진행하고 강릉에 주둔하고 있었다.
북한군은 1950년 6월 25일 기습남침을 감행했고 당시 제8사단은 지연전을 펼치며 필사적으로 방어해 전쟁초기 불리한 전세에도 강릉지역을 3일이나 지탱해 내는데 성공했다.
이후 제8사단은 제천에 집결하여 와림국민학교에 전투지휘소를 설치하고 제천농업학교에 주둔하면서 교량 파괴와 경비에 임해 방어태세를 갖추었다. 이어서 아군은 적 2개 사단이 제천으로 향해오는 것을 확인하고 소사리, 봉양리를 연하는 선의 일대에 병력을 배치해 적의 남진을 저지하고자 했다. 이어서 박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8사단은 1950년 8월경에, 안동지역에서 영천 북방으로 이동하여 방어했다. 당시 북한군은 용마산 방면으로 끊임없이 침투하였고, 제8사단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수색대를 파견하여 북한군의 역습을 방어하고자 했다.
북한군은 1950년 8월 20일 기계, 안강 일대, 영천 북방에서 공격을 실시했다. 제8사단 장병들은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입암-영천 부근 도로를 봉쇄했지만, 북한군의 대규모 병력이 공격하여 방어진지가 돌파되었다. 이에 제8사단 장병들은 후퇴하여 사령부를 금호로 이동시키고 적의 영노동, 작상동 선에 위치한 포위망을 돌파하며 영천군을 재탈환했다. 제8사단은 부대를 정비하고 1950년 9월 20일부터 국군의 총 반격작전에 합류했다. 이에 북한군은 1950년 9월 24일에 240고지에서 전초진지를 구축하여 강렬하게 저항했으나 국군의 군사력에 대응하지 못하고 의성 시내, 영주와 풍기 서북방의 15km 지점 939고지에서 패주했다.
1950년 10월 9일에는 연천, 10일에는 철원을 탈환하고 평강으로 도주하는 북한군을 바짝 뒤쫓았으며 이천-곡산-수안-율리를 거쳐 18일에는 평양 동쪽의 삼등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박 일등중사는 1950년 10월 29일 북한군과의 전투에서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문규 일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9-ㅂ-033)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