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문규(朴汶奎)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604406
  • 전몰일자 : 19521024

공훈사항

박문규 이등중사는 1927년 1월 28일에 전라북도 전주시 서부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2월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을 하던 1951년 3월 28일에 제주도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2사단 직할부대인 공병대대에 배치되었다.
박문규 이등중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1951년 5월 하순, 제2사단은 청평 일대에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저지하고 반격으로 전환하여 철원-김화 방향으로 진격하고 있었다. 얼마 후 육단리-적근산을 잇는 선까지 진출했다.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 되었다. 사단은 상급부대의 명령에 의거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공세적인 행동을 실시했다.
제2사단은 10월 13일에 김화-금성진격작전을 개시하여 18일까지 522고지-477고지-하진현 선을 점령하여 금성천 분지를 확보했다. 이후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다가 사단은 1952년 3월 10일부로 미 제9군단으로부터 배속해제 되어 사창리 일대로 이동했다. 사단은 사창리 일대에서 야외기동훈련을 실시했다. 이는 전선의 교착으로 별다른 전투가 없는 상황에서 한국군 강화라는 목적 외에 추후 있을지도 모르는 공산군의 공세에 대비한다는 전략적인 목적 아래 취해진 훈련이었다.
박문규 이등중사가 소속된 공병대대는 교량 거부 및 장애물 설치 등 전기전술을 집중적으로 연마했다. 그리고 1952년 6월 1일부로 미 제9군단에 재배속되어 김화 동쪽의 남대천 일대 주저항선에 배치되어 있던 미 제40사단의 진지를 인수했다.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고, 공산군은 휴전협상에서 지연전술을 쓰며 군사력 증강에 노력했다. 따라서 유엔군사령관은 공산군의 공격 의지를 분쇄하고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예하 부대에 공세적인 행동을 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제2사단에서는 오성산에 남쪽 남대천 부근에 솟아오른 해발 580미터의 무명능선(저격능선)을 공격하기로 했다. 사단은 제17연대가 10월 14일에 공격을 개시하여 저격능선을 탈취했으나, 중공군의 역습으로 공방전이 계속되었다. 박문규 이등중사가 소속된 공병중대는 전방연대를 직접지원하며 공격을 선도했다. 항상 공격작전 시에는 최전방에서 장애물을 개척하며 공격을 선도하고, 방어작전 시에는 장애물을 설치하여 적의 공격을 지연시키는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10월 24일 방어작전 시에 분대장으로서 선두에서 장애물 설치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문규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3판-3면-04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0-ㄹ-06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