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무호(朴武鎬)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6801232
  • 전몰일자 : 19510212

공훈사항

박무호 일등중사는 1922년 4월 5일 경상북도 영주군 풍기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안보와 자유를 지키고자, 1949년 7월경 제3사단 제22연대에 입대했다. 박 일등중사는 1950년 3월까지 경북지역에 침투한 공비 소탕작전에 앞장섬으로써 북한군의 후방교란 기도를 분쇄하는 데 기여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22연대는 서울로 이동하여 고양 일대에서 북한군 제1사단과, 한강방어선의 금곡리, 풍덕천 일대에서 북한군 제3사단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며, 조치원-청주-보은 일대로 지연전을 펼치면서 적의 남진을 저지했다. 연대는 제3사단으로 원대 복귀하여, 7월 26일부터 9월 14일까지 강구, 영덕, 흥해, 포항, 형산강 일대에서 북한군 제5사단과 공방전 끝에 적의 공격을 물리치고, 총반격태세로 들어갔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16일 총반격작전으로, 9월 22일 추격작전으로 전환했다. 박 일등중사와 연대 장병들은 평해-울진-삼척-강릉으로 일일 평균 17.3km의 속도로 진격했다. 연대는 10월 2일 38도선을 돌파하여 북진했다. 연대는 10일 원산을 확보한 후 잔적을 소탕했다. 10월 26일 원산에 상륙한 미 제1해병사단이 연대의 임무를 인수함에 따라 연대는 길주-백암-혜산진으로 북진하여 30일 선두부대가 한·중 국경선의 혜산진에 도달했다. 하지만 중공군의 참전으로 연대는 12월 10일 흥남에서 해상철수를 개시하여 구룡포에 상륙했다.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전 전선에 걸쳐 제3차 공세를 감행했고, 연대 장병들은 북한군 제10사단의 집중공격에 맞서 분전했으나 진지가 돌파당하자 평창으로 철수했다. 연대는 1월 15일부터 19일까지 전선의 간격을 뚫고 경북 영주 남대리 부근으로 침투한 북한군 제31사단을 격멸했다.
2월 11일 중공군은 제4차 공세(2월 공세)를 감행했다. 이때 연대는 횡성의 섬강 일대에서 중공군 제197사단과 혈전을 벌였다. 연대 장병들은 분전했으나 적의 집중공격으로 진지가 돌파당하자 12일 원주로 철수했다. 이 전투에서 박 일등중사는 소대원을 독려하며 진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2월 12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무호 일등중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22333 육)을 추서하고, 그의 유해(41묘역-1판-1585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6-ㅌ-04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