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무수(朴茂洙)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0603087
  • 전몰일자 : 19510624

공훈사항

박무수 이병은 1927년 11월 20일 전라북도 전주시에서 출생하였다. 박 이병은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박 이병은 1951년 1월경 입대 후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9사단 제29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이병의 부대 전입 당시 국군과 유엔군은 37도선 일대에서 적군과 공방전을 펼치고 있었고, 제9사단은 강원 정선 일대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었다. 이후 제9사단은 3월 5일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안동 일대까지 침투했다가 북상하던 북한군 제10사단이 두타산(1,361고지) 북쪽의 삼화리를 경유해 이동 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했다. 이에 따라 박 이병과 연대 장병들은 송계리에 투입되었다.
송계리에 투입된 제9사단은 북한군을 차단하기 위해 남쪽과 동남쪽에서 공격을 개시하였다. 적들은 포위망이 압축되자 밤이 되어 아군이 공격을 잠시 중지한 틈을 이용하여 포위망을 뚫고 북쪽의 목계리로 도주했다.
유엔군은 1951년 4월에 접어들어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다. 제9사단은 경미한 적의 저항을 받으며 4월 중순 하진부리 일대까지 진격했다.
이후 제9사단은 4월 25일부로 제3군단에 배속되어 미 제8군의 작전계획에 따라 5월 7일 미주리(Missouri)선(가리봉산∼인제 북방∼원통 북방∼미시령∼속초를 잇는 선) 확보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였다.
사단은 강원 인제 동남방의 한석산, 가리봉 일대까지 진출해 인제 남방의 598고지를 점령했다. 그러나 이 무렵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 징후가 포착되어 사단은 방어 태세로 전환했다.
미 제8군의 반격계획에 따라 제9사단은 와이오밍(Wyoming)선(캔자스선 북방 20km 내외의 철의 삼각지대를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향로봉-지장봉을 연하는 산악을 따라 고대산을 공격했다.
그 결과 제9사단은 영평 일대에서 공격을 개시하여 중공군 제65군 예하 제165사단과의 격전 끝에 향로봉과 지장봉을 포위 공격하여 점령했고, 최종 목표인 고대산을 확보했지만 이 과정에서 박 이병은 전투에 앞장서서 돌격을 감행하다 적탄에 맞아 1951년 6월 24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무수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8-ㅈ-06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