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묘철(朴妙喆)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6436
  • 전몰일자 : 19510607

공훈사항

박묘철 일병은 충청북도 중원군 동량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박 일병은 1951년 1월경 입대한 후 제주도에 있는 제5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8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제8사단 장병들은 혹한과 강설로 진지 구축을 제대로 할 수 없었지만, 적의 주 접근로에 지뢰와 장애물을 설치하여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이러한 제8사단 장병들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좌·우측 전선이 돌파되었기에 강원도 홍천군 방면으로의 철수가 불가피하였고 결국 제8사단 장병들은 목계리를 경유 황강리로 이동하여 부대정비에 임하였다.
신병이 대거 투입된 제8사단을 비롯하여 소속 연대들은 1951년 2월 4일부터 집결과 함께 진격을 개시했다. 아군과 적군은 홍성, 횡성 지구에서 고지 선점을 위한 수일간의 치열한 전투를 전개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사실 중공군의 유인책이었고, 1951년 2월 11일부터 중공군 제4차 공세가 전개되었다. 끊임없는 중공군의 공세에 의해 제8사단을 포함하여 모든 연대는 고립된 채 후방이 포위되었다. 제8사단은 포병 1개 대대와 전차 5대로서 포위를 벗어나려 했지만 결국 소부대로 분산되며 철수하게 되었다. 이때 제8사단은 중공군의 제4차 공세로 장교 약 300여 명과 사병 약 7,000여 명이 전사 및 실종됨에 따라 남은 인원은 3,000여 명에 불과하게 되었다.
큰 전력 손실을 입은 제8사단은 1951년 3월 대구로 이동하여 국군 제1군단에 배속되어 전력을 재정비하고 부대를 재편성하였다. 제8사단 장병들은 전력보강 이후 1951년 4월 3일부터 1953년 5월경까지 호남지구에서 무장공비토벌작전을 수행했다.
당시 금산·정읍·순창·부안군 일대에 지역에는 좌익 및 북한군 낙오병이 합세함에 따라 공비가 약 3,000여 명에 달했으며 이들은 민가, 도로, 행정시설 등에 대한 유격 활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이에 제8사단은 고지를 점령하고 적의 퇴로를 차단해 공비를 토벌하는 다대한 전과를 세웠지만 공비토벌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박 일병은 적탄에 맞아 1951년 6월 7일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묘철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19판-4면-18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2-ㄷ-022)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