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모진(朴模鎭)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9224288
  • 전몰일자 : 19530716

공훈사항

박모진 일병은 경상남도 의령군 유곡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포로교환문제 등으로 휴전협상이 지속되던 1952년 7월 중순경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수색대로 배치되었다.
박모진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휴전협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1군단에 배속된 제5사단은 강원도 거진 일대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전선 방어에 임하고 있었다.
사단 정면의 북한군 제9사단이 사단 전초진지인 351고지를 집중 공격하여 사단은 적에게 동 고지를 탈취당했다. 그러나 사단은 제27, 35연대를 번갈아 투입하며 적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결국 이 고지를 탈환했다. 이후 사단은 1952년 11월 10일 이 전선을 제15사단에게 인계하고 육본 직할로 간성에서 부대정비 및 교육훈련에 임했다.
1953년에 접어들면서 사단은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산악훈련을 실시한 후 4월 5일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박모진 일병이 소속된 사단은 4월 15일 강원도 화천군 임남면 백암산 동북방 제3사단 전선을 인수하여, 949고지-973고지-883고지를 잇는 전선을 방어했다. 사단 전방의 중공군 제60군 제180사단은 5월 12일 사단의 전초진지인 689고지(텍사스고지) 및 오봉능선과 삼각봉을 공격했다. 그러나 사단은 5월 17일까지 4차례의 역습을 실시하며 적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적을 격퇴했다.
마침내 중공군은 6월 10일 본격적인 하계공세를 시작하면서 제60군 제180·181·203사단을 투입하여 인해전술을 펼치며 파상적인 공격을 가해 왔다. 사단은 제3사단 제22연대를 배속 받아 3차례 역습을 하면서 6월 15일까지 혈전을 거듭했다. 그러나 적에게 주저항선을 빼앗기고 북한강 동·서안의 등대리-후동-널우골을 잇는 선까지 후퇴하여 新방어진지를 편성했다. 7월 11일 전선 조정으로 화천 북방의 백암산을 포함한 제3사단의 동측 일부를 사단이 담당하게 되면서 책임지역이 확장되었다. 수색대는 제35연대에 배속되어 적진으로 이어지는 103번 도로의 방어를 전담했다.
그렇지만 사단은 7월 14일부터 18일까지 백암산 부근에서 중공군을 2개 사단의 공격을 물리치고 금성천 북쪽으로 격퇴시켰다. 박모진 일병은 7월 16일 분대원과 함께 103번 도로의 저지진지에서 방어 중 적 침투부대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모진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37판-6면-14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6-ㅊ-053)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