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명희(朴明熙)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5701371
  • 전몰일자 : 19501005

공훈사항

박명희 하사는 1931년 8월 7일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1949년 1월경 포병학교에 입교하여 주특기교육을 수료하고 제7사단 제5포병대대에 배치되었다.
제5포병대대는 의정부, 창동 전투와 한강방어선전투에서 사단을 화력지원하며 적의 남진을 지연시켰다. 육군본부는 1950년 7월 5일 사단을 재편하면서 기존의 제1·3·5·6·7포병대대를 해체하여 제1포병단을 창설하고, 예하에 제10·11·16·17·18·50포병대대를 창설했다. 이때 박 하사는 제11포병대대로 전속되었다. 포병은 미군의 지원에 힘입어 계속 증편되었고, 급박해지는 각 전선에 보병을 지원하기 위해 출동했다. 제11포병대대는 7월 30일부터 제3사단에 지원되었다.
제3사단은 9월 14일까지 낙동강방어선의 영덕, 흥해, 포항, 형산강 변 일대에서 북한군 제5사단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적의 공격을 물리쳤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16일 총반격으로 전환했고, 제3사단은 9월 17일 형산강을 도하하여 반격을 개시했다. 이때 적 제5사단도 쉽게 물러나지 않고 강력하게 저항했다. 사단은 해·공군의 폭격 지원하에 치열한 전투 끝에 18일 도하작전에 성공했고, 여세를 몰아 9월 22일 흥해까지 진격했다.
국군은 22일부터 추격작전으로 전환했고, 사단은 23일부터 추격작전을 전개했다. 사단은 일일 평균 17.3km의 속도로 진격하여 영덕, 울진, 삼척, 강릉(30일)을 차례로 탈환하고, 10월 1일 인구리 북쪽에서 38도선을 넘어 북진함으로써 최초의 38도선 돌파부대가 되었다.
박 하사와 사단 장병들은 사기충천하여 2일 양양을 점령하고, 거진을 거쳐 5일 장전에서 적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혔으나, 이를 제압하고 계속 북진했다. 부대가 신속이 기동하는 가운데 적지적인 화력지원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박 하사는 어려움 속에서도 적시적인 화력 지원을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10월 5일 장전전투에서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명희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4판-8면-16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5-ㄴ-04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