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명훈(朴明勳)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612235
  • 전몰일자 : 19510713

공훈사항

박명훈 일병은 1926년 2월 27일에 강원도 원주군 원주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이 38도선 상에서 한 치의 땅이라도 더 뺏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1951년 4월 초,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동년 5월 1일에 제2사단 제17연대에 배치되었다.
박명훈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때, 제2사단은 안동-속리산-제천 일대에서 게릴라 소탕작전을 마무리하고 4월 28일에 청평 일대로 이동하여 미 제9군단에 배속되었다. 그가 소속된 사단은 5월 16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저지하기 위한 방어작전에 참가했다. 당시 공산군의 작전목적은 주공을 동부 전선으로 지향해 그곳에 집중된 국군을 격멸하여 미군을 고립시킴으로써 향후 휴전협상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것이었다. 국군과 유엔군은 두 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춘계공세(4월, 5월)를 서울 북방-마석-용문산-홍천-하진부리-대관령-강릉을 잇는 선에서 저지하고 반격작전으로 전환했다.
박명훈 일병이 소속된 제2사단은 군단계획에 따라 적의 주력부대와 예비대가 방어태세를 갖추기 전에 섬멸하기 위하여 최대한 신속히 반격하기로 했다. 이에 사단은 5월 20일을 기해 미 제24사단의 가평 진출을 엄호하고, 5월 24일 오전 7시에 일제히 공격했다. 일명 가평-화천 진격전을 실시한 것이다.
이로써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의 춘계공세가 시작된 이후 계속된 수세에서 벗어나 38도선을 향해 일제히 공격작전을 펼치게 되었다. 미 제9군단은 5월 31일까지 전곡-철원-김화-화천을 잇는 와이오밍 선을 확보했다. 제17연대 장병들은 사창리-다목리-김화에 이르는 계곡통로의 우측 능선을 따라 공격하여 6월 14일에 적근산(1073고지)을 확보했다. 이후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전 전선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고, 연대는 방어진지 보강과 수색정찰 활동에 집중했다. 그러던 중 박명훈 일병이 소속된 소대는 7월 13일에 방어지역 전방으로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매복조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전투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명훈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8368 육)을 추서하고, 그의 유해(35묘역-3판-2184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9-ㅋ-03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