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명환(朴明煥)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206530
  • 전몰일자 : 19510212

공훈사항

박명환 중위는 서울시 용산구 용문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박 중위는 사병으로 복무하다 장교를 지망했고, 1950년 11월 15일 육군 소위로 현지 임관하여 제3사단 제23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중위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청천강, 장진호 일대에서 중공군과 접전 중이었고, 제3사단은 동해안 축선에서 북진 중인 상황이었다. 사단은 길주-백암으로 북진하여 25일 백암을 확보하고, 계속 북진을 하는 중에 30일 상급부대의 철수명령이 하달되었다. 12월 10일 사단은 흥남에서 해상철수를 개시하여 부산에 상륙했다.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전 전선에 걸쳐 제3차 공세를 감행했고, 연대 전방에는 북한군 제2사단이 투입되었다. 적의 집중공격에 맞서 연대 장병들은 분전했으나 진지가 돌파당했고, 1951년 1월 2일 군단 작전명령에 따라 평창으로 철수했다.
국군 철수과정에서의 부대간격을 이용하여 북한군 제2군단이 영월-영주 방향으로 깊숙이 침투했다. 이때 연대는 제7사단에 배속되어 1월 19일부터 24일까지 북한군 제10사단을 물리치고 영월을 탈환하고, 이어 2월 10일까지 홍천 탈환전에 투입되어 전력을 다하여 싸웠으나, 홍천을 탈취하지는 못했다.
2월 5일 미 제10군단과 국군 제3군단이 라운드업 작전을 전개하여 반격을 했고, 이때 사단은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2월 10일 평창으로 북상하여 횡성 동북방의 제5사단 작전지역을 인수했다. 2월 11일 중공군은 횡성-원주 축선에 전력을 집중하여 2월 공세를 감행했다. 횡성 동북방에서 공격하던 연대는 중공군 제197사단의 강력한 반격을 받고 섬강 일대에서 혈전을 벌이면서 적의 전진을 저지했다. 연대는 적의 전진을 지연시키며 횡성-원주 남동쪽으로 철수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박 중위는 소대원을 이끌고 전투 시마다 솔선수범 앞장섰고, 이 전투에서도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적탄에 맞아 2월 12일 장렬히 전사했다. 연대의 선전으로 횡성 후방으로 우회 기동하여 유엔군의 퇴로를 차단하고자 하던 중공군의 계획은 차질을 빚게 되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명환 중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26-ㅋ-04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