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명환(朴明煥)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30956
  • 전몰일자 : 19510217

공훈사항

박명환 일병은 경기도 용인군 내서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인해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6월 초순경 용산에 위치한 제19연대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소총병으로 배치되었다.
6·25전쟁 초기 제19연대는 춘천지역을 방어 중인 제6사단의 예하부대로서 사단 우측 전방에 배치되어 화천 방향으로 남하하는 북한군 제2사단의 공격을 3일간 저지하여 개전초기 북한군의 수도권 외곽 포위 기도를 완전히 분쇄했다. 이는 국군의 한강방어선 구축과 유엔군 참전과 반격을 위한 시간과 전투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계속해서 북한군이 낙동강전선에서 8월 공세에 이어 9월 공세를 펼쳤지만 결국 마산-대구-포항선의 아군방어선을 돌파하는데 실패했다.
이러한 혼전 속에서 박명환 일병은 낙동강전선 근처에서 전투에 참가하여, 오로지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겠다는 마음으로 용감하게 싸우다가, 중상을 입고 경상남도 양산에 위치한 제1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다. 박명환 일병은 건강을 회복 후 평시 관심을 가졌던 의무분야에 근무하기 위해 경상남도 동래에 위치한 육군군의학교로 입교하여, 의무병으로서 필요한 소정의 교육과정을 수료한 후, 다시 제5육군병원으로 전속되었다.
제5육군병원은 부산에서 창설하여, 환자진료기관으로 환자치료에 전력을 다했다. 또한 병원은 전투 또는 훈련 중 부상한 장병들을 주로 치료했으며, 시설 경계는 의무병들이 담당했고, 때로는 기동타격대를 편성하여 인근 지역으로 출동하여 적 게릴라 소탕 작전도 실시했다. 그러던 중 박명환 일병은 1951년 2월 17일 병원 인근 지역에 적 게릴라가 출동했다는 주민신고를 받고 출동하여, 적 게릴라를 탐색 중 은거해 있던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명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85-ㅅ-05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 전사자 명부에는 소속이 제19사단 소속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당시 없는 부대이므로 오기로 추정하여 소속을 제19연대로 조정함.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