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명환(朴明煥)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K1137123
  • 전몰일자 : 19511117

공훈사항

박명환 일병은 경상북도 금릉군 우보면에서 출생했다(출생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했던 1950년 9월 20일,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카투사(KATUSA)로 차출되어 미 제3사단 제7연대로 배치되었다.
박명환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10월 중순, 미 제3사단은 일본에서 한국전쟁에 투입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단 장병들은 11월 5일에 일본을 출항하여 17일에 원산에 상륙하여 항만과 비행장을 방호하다가 20일에 함흥으로 이동하여 흥남항 외곽방어선을 점령하여 미 제1해병사단의 장진호 철수를 엄호하고, 흥남철수작전을 엄호한 후 12월 24일에 마지막으로 철수했다.
박명환 일병이 소속된 미 제3사단은 부산항에 도착한 후 부대 정비를 실시하고 있다가 12월 31일 야간에 시작된 ‘중공군의 신정공세’로 아군이 위험해 지자, 1951년 1월 7일에 평택으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이후 1월 25일 반격작전 시에 남한산성 방향으로 공격하여 2월 10일에 한강 이남을 확보했고, 2월 11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2월 공세 시에 경기도 광주 일대로 철수했다. 이어 3월 7일부터 동두천까지 진격했고, 계속 공격하여 4월 21일에 ‘철의 삼각지대’에 근접했다.
미 제3사단은 4월 22일부터 시작된 ‘공산군의 4월 공세’로 다시 철수하여 미 제9군단의 예비로서 서울 이남에서 대기하다 5월 16일부터 시작된 ‘공산군의 5월 공세’ 시에 동부전선에 대규모 돌파구가 형성되자, 5월 20일 저녁 8시부로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돌파구 첨단지역인 속사리로 투입되었다. 이곳에서 사단은 적의 공격을 격퇴하고, 5월 21일부터 반격하여 풍암리를 거쳐 운두령 방향으로 진격하여 22일 저녁에 운두령을 확보했다.
박명환 일병이 소속된 미 제3사단은 5월 29일부로 다시 미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하여 운천으로 이동했고, 6월 3일부터 철원 방향으로 공격하여 고대산(464고지)를 탈취하고 방어로 전환했다. 이후 휴전협상 진행으로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고, 사단 장병들은 진지보강과 수색작전 활동을 강화했다. 그러던 중 그가 소속된 소대는 11월 17일에 작전지역 내로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침투조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로 격멸했다. 이날 그는 용감하게 전투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명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90-ㅎ-08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