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명화(朴明和)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201600
  • 전몰일자 : 19510714

공훈사항

박명화 하사는 충청북도 충주군 단월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선으로 철수하며 북한군의 공격을 지연하던 1950년 7월 15일, 경북 대구의 제25교육연대로 입대하여 단기간의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2연대로 배치되었다.
박명화 하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8월 하순, 제6사단은 신녕 북방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고 있었다. 이후 사단은 북한군의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하여 파죽지세로 진격하여 10월 4일에 춘천 북방에서 38도선을 돌파하여 10월 26일에 선두부대가 압록강 변까지 진출했다. 이후 두 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공격으로 다시 38도선까지 철수하여 동두천 북방의 전곡-백의리 선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그리고 중공군의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로 제6사단은 장호원 부근의 적산리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이곳에서 유엔군은 1951년 2월 11일에 시작된 중공군의 2월 공세를 지평리-원주 선에서 격퇴하고 반격작전으로 전환했다.
박명화 하사가 소속된 제6사단은 반격작전 시에 북한강 남안의 가평-의암선까지 진출하고, 3월 22일부터 북배산-수덕산-지암리 방향으로 공격하여 4월 6일에 화악산까지 도달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4월 22일부터 시작된 중공군 4월 공세로 철수하여 4월 27일에 용문산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그가 소속된 제2연대는 용문산 전방에 전초진지를 점령했다.
중공군은 5월 16일부터 총공세(일명 중공군의 5월 공세)을 했다. 박명화 하사가 소속된 제2연대는 전초진지에서 전면방어로 사수하여 적 전투력을 소모하게 함으로써 사단 작전에 크게 기여했다. 사단은 5월 24일부터 용문산에서 출발하여 계관산-북배산을 점령한 뒤, 26일에 춘천 동북방으로 진출하여 28일 화천저수지까지 진출했다.
제6사단은 부대정비를 실시한 후 6월 6일부터 다시 공격하여 6월 10일에는 최종목표인 취봉(987고지)을 점령했다. 이후 방어로 전환하여 제7, 제19연대를 당거리-782고지-1057고지에 배치하고, 박명화 하사가 소속된 제2연대는 백암산 남쪽 기슭에 배치했다. 이 시기에 유엔군과 공산군이 휴전협상을 진행하면서 전선에서 전투는 중단되었다. 이에 장병들은 방어진지 보강과 교육훈련에 집중했다. 그러던 중 그가 소속된 소대는 7월 14일에 작전지역 내에서 수색작전을 하던 중 적 침투부대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명화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29621 육)을 추서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4-ㅋ-02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