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명호(박명호)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5700879
  • 전몰일자 : 19500802

공훈사항

박명호 이등중사는 1929년 1월 18일에 출생하였다(출생지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수호하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9년 1월 7일 용산에 있는 제2포병훈련학교에 입대하여 포병 주특기 교육을 받고, 육군직할 제1포병연대에 배치되었다.
박명호 이등중사는 6·25전쟁 이전에 발발한 38도선 상에서의 산발적인 교전에 참가하여 적을 격멸하는 데 기여했다. 그리고 1949년 10월 15일 육군포병연대가 육군포병학교로 개칭되자, 조교로서 보직되어 확장되는 포병부대원 교육에 전념함으로써 포병 육성에도 크게 기여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포병학교 포병대대는 의정부와 창동 전선에 투입되어 적 전차를 직접 조준사격으로 파괴하는 전과를 획득하기도 했으나, 전방 사단들의 철수와 함께 한강 이남으로 철수하여 재정비를 했다. 초기전투에서 많은 부대들이 극심한 피해를 입자 육군본부는 1950년 7월 5일 사단을 재편했다. 이때 포병도 기존의 제1·3·5·6·7포병대대를 해체하여 제1포병단을 창설하고, 예하에 제10·11·16·17·18·50포병대대를 창설했다. 이때 박 이등중사는 제11포병대대로 전속되었다. 포병은 미군의 지원에 힘입어 계속 증편되었고, 급박해지는 각 전선에 보병을 지원하기 위해 출동했다. 제11포병대대는 7월 30일부터 동해안 축선의 제3사단에 지원되었다.
제3사단은 7월 24일 서울 지역에 파견되었던 제22연대가 원대 복귀함에 따라 사단의 전투력이 크게 증강되었다. 이에 사단은 지·해·공 합동작전을 전개하여 다시 공격을 개시했다. 이에 힘입어 사단은 영덕을 사이에 두고 적과 백병전이 거듭되는 공방전을 펼친 끝에 8월 2일 마침내 영덕을 탈환했다. 박명호 이등중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모든 전투에서 앞장서 왔고, 이 전투에서도 포반원을 독려하며 쉴 새 없이 적진에 포격을 가하다 적의 포격에 맞아 8월 2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명호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3판-6면-2789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23-ㅇ-00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