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명하(朴明夏)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상사
  • 군번 : 0327441
  • 전몰일자 : 19500815

공훈사항

박명하 일등상사는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1945년 일제가 패망하면서 광복을 맞이했으나, 정부수립 준비로 혼란스러웠던 1947년 5월 하순, 그는 충남 대전의 제2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제2연대는 1948년 12월 29일부터 1949년 5월 17일까지 제주4·3사건 진압에 투입되었고, 동년 8월 13일부터 옹진지구 전투에 투입되어 북한군의 도발을 응징하고 11월 15일에 서울 용산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1950년 6월 12일부로 제6사단에 예속되어 홍천으로 이동하여 제8연대연대로부터 홍천 북방의 방어진지를 인수했다.
박명하 일등상사가 소속된 제2연대는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지형도 잘 모르고 방어준비도 미흡한 상황에서 북한군의 전면적인 기습공격을 받았다. 이후 경계지역전투, 주저항선 전투(어론리, 자은리, 철정리), 최후저항선전투(철정리, 한계리, 성산리)에서 지형의 이점을 이용하여 반격하는 등 공세적인 전투로 홍천 북방에서 적 부대의 진출을 3일간이나 지연시켰다.
제2연대는 6월 29일에 홍천에서 철수하여 횡성-원주를 거쳐 7월 2일에는 충주로 이동했다. 그리고 7월 5일에 충주에서 남한강이라는 지형의 이점을 이용하여 방어하던 중 7월 7일 야간에 북한군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문경으로 철수했다. 제6사단은 7월 12일에 조령(19연대)과 이화령(2연대) 일대에서 방어진지를 점령하여 북한군 제1사단과 이를 증원하고 있던 북한군 제13사단의 공격을 저지하였다. 사단은 7월 16일에 문경에서 철수하여 유곡-점촌으로 이어지는 도로 축선을 따라 지연전을 펼치며 북한군의 진출을 지연시켰다.
제6사단은 8월 1일에 낙동강방어선의 용기동으로 이동하여 8월 3일에 용기동∼교안동∼307고지를 잇는 고지군을 점령하고 이곳에서 8월 12일까지 지탱했다. 이날 저녁 북한군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위천 북쪽 1∼3㎞ 지점에서 감제고지인 국통산∼청노동을 연결하는 선으로 철수했다. 이곳에서 박명하 일등상사는 장병들과 함께 죽음을 각오하고 싸웠다. 특히 8월 15일 밤은 전례 없는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소대선임하사로서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명하 일등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0판-5면-19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9-ㄷ-02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