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명철(박명철)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613202
  • 전몰일자 : 19511019

공훈사항

박명철 하사는 1925년 6월 15일에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4월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작전으로 전환했을 때인 1951년 4월 중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2사단 직할부대인 수색대에 배치되었다.
박명철 하사가 전입했을 시기에 제2사단은 중공군의 5월 공세를 저지하고, 즉각 반격으로 전환하여 6월 중순에 육단리-적근산을 잇는 선까지 진출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이후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유엔군사령관은 1951년 7월 중순부터 휴전협상을 지연시키면서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는 공산군에게 군사적인 압력을 가함으로써 휴전회담의 조기타결을 강요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각 부대에 방어진지 전방에 대한 공세적인 행동을 하라고 명령했다.
제2사단은 방어진지 전방의 감제고지인 745고지를 탈취하기 위해 8월 2일 공격을 개시했다. 첫날 공격에서 745고지를 탈취했으나, 그날 야간에 중공군의 역습으로 다시 빼앗겼다. 이러한 고지쟁탈전이 8월 8일까지 계속되었으나 결국은 탈취하지 못하고, 다시 준비하여 9월 1일부터 3일까지 공격에서 탈취했다. 이후 사단은 10월 13일에 김화-금성진격작전을 개시하여 10월 18일까지 연대별로 부대를 교대하면서 공격하여 김화 북쪽 14km에 있는 금성까지 진출하는 데 성공하여 금성천 분지를 확보했다.
박명철 하사가 소속된 수색대는 공격작전 시에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적 지휘소 및 보급소 등 주요시설을 타격하여 교란하고, 중요한 적정을 수집하여 사단에 보고하였다. 수색대는 10월 18일에 적진에서 적 상황을 수집하던 중에 적 부대의 공격을 받아 전투가 벌어졌다.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웠으나 전투 중에 적의 총탄에 중상을 입고 치료 중 10월 19일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명철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장병1묘역-111판-4552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1-ㅎ-09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