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명준(朴明俊)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30108

공훈사항

박명준 순경은 1939년 12월 19일 경남 합천군 초계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경남도경 합천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합천에서 전사했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박 순경이 경남도경에 배치될 무렵의 전황은 북한군이 아군의 낙동강 방어선을 돌파하기 위해 전투력을 보강하고 있었고, 유엔군은 9월 초부터 동·서해안에 양동작전을 펼치는 가운데 인천지역에 대한 대규모 상륙작전을 준비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박 순경은 경남도경 배치되어 곧바로 공비 격멸작전에 투입되었다. 당시 대구지역에 침입한 공비들은 대구-부산 간의 철도터널을 파괴하려고 했다. 이 작전에는 경남·충남·경북·전남 경찰부대가 투입되었는데, 박 순경은 밀양에 투입(1950.8.14)되어 공비 격멸작전을 수행했다,
그 후 박 순경의 부대는 8월 하순 진동리를 방어하던 군경부대가 적의 공세에 밀려 진동리로부터 철수하자 진동리에 투입되어 전남·전북 경찰부대와 함께 방어작전을 수행했다.
진동리지구 방어작전 참가 후 박 순경의 부대는 부산으로 복귀하여 피난민 구호와 통제활동, 철도·교량·항만시설 경비, 오열색출 등의 임무를 수행하다가 고창 탈환전(1950.11.10-11.20)에 참가했다. 당시 전북 고창은 북한군이 북상한 뒤 1,000여 명의 공비들이 잔류하여 이 지역 일대에서 양민 학살과 약탈을 자행하고 있었다. 11월 10일 경남경찰부대와 제18전경대대, 그리고 고창경찰이 합동으로 공격을 개시하자 공비들은 큰 저항을 포기하고 11월 20일 장성으로 퇴각했다. 이후 박 순경의 부대는 합천으로 복귀하여 피난민 구호와 통제활동, 철도·교량· 경비, 오열색출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1953년 1월 초 영남 동부지역의 신불산·대운산·운문산 일대의 공비들이 치안을 교란하면서 약탈을 자행하고 있어서 치안국은 울산 언양에 영남지구 전투경찰사령부를 설치하고 공비 토벌작전에 들어갔다. 1월 8일 공비토벌작전을 수행하던 박 순경은 적을 격멸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가 공비가 쏜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명준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6-ㅌ-083)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