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명조(朴命祚)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1120196
  • 전몰일자 : 19501122

공훈사항

박명조 이병은 1926년 5월 26일에 경상남도 산청군 매촌리에서 출생하였다. 박 이병은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박 이병의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1950년 5월 중순경에 입대 후 제7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1950년 7월 5일에 제7사단이 해체됨에 따라 제1연대는 수도사단에 편입되었고, 동년 10월 25일에 제9사단이 창설됨에 따라 제1연대는 제9사단으로 편입되었다. 따라서 제1연대 소속이었던 박 이병은 전후 행정처리 과정에서 소속이 제9사단 제28연대로 정리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박 이병이 속한 제1연대는 동두천 북쪽 소요산 일대와 창동 방어선에서 북한군과 혈전을 벌이면서 적의 남진을 지연시켰다. 6월 28일부터는 한강 방어선의 노량진 일대에서 북한군의 도하 공격을 6일간 저지했다.
이후 연대는 7월 5일에 수도사단에 편입되어 7월 6일부터 평택-진천-청주-보은-안동 방면으로 지연전을 펼쳤다. 그러나 북한군 제12사단은 제8사단의 뒤를 따라 계속 공격해왔다. 연대는 7월 31일부터 8월 1일까지 안동전투에 투입되어 제8사단의 철수를 엄호하며 낙동강 남쪽으로 철수했다.
북한군은 8월 5일에 ‘8월 공세’를 개시했다. 연대는 진지 후방으로 침투한 북한군 제12사단과 전투를 이어가며 의성으로 철수하였고 의성-영덕 사이에는 큰 전선의 공백이 발생했다. 북한군 제12사단은 국군의 저항을 전혀 받지 않고 청송-죽장-기계 축선으로 남하해 8월 9일에 기계를 점령하고, 11일에는 포항을 점령했다.
북한군의 9월 공세 당시 제1연대는 경주 북방의 호명리 일대에서 9월 9일까지 북한군 제12사단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적을 격퇴하였다.
이후 국군과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힘입어 총반격작전으로 전환하였다. 아군은 1950년 10월 1일에 38도선을 넘어 10월 10일 원산을, 19일 평양을 점령하고 계속 북진하였다.
아군이 북으로 진격함에 따라 퇴로를 차단당한 적의 잔류 병력은 아군의 후방을 교란했다. 동시에 예기치 않은 중공군의 참전으로 인해 박 이병은 이후 진행된 작전 수행 중 적탄에 맞아 1950년 11월 22일에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명조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7-ㅋ-032)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