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명용(朴明用)

  • 군별 : 육군
  • 계급 : 상병
  • 군번 : 0336649
  • 전몰일자 : 19510416

공훈사항

박명용 상병은 전라남도 무안군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6·25전쟁 발발 이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조국이 다시 위기에 처하자, 그는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박 상병은 1950년 12월 초순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5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상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유엔군이 37도선으로 철수 중이었고, 제7사단은 순천-승호리-시변리-춘천으로 지연전을 펼치며 철수하여 12월 15일 춘천 동북방 일대에 방어진지를 구축 중인 상황이었다. 12월 31일 중공군은 제3차 공세를 시작했고, 연대는 북한군 제10사단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박 상병과 연대 장병들은 분전했으나, 주진지가 돌파됨에 따라 상급부대 계획에 따라 자은리를 거쳐 횡성 북방으로 철수했다. 적의 압박 가중됨에 따라 연대는 또다시 철수하여 1951년 1월 8일 영월 북서방의 석항리 일대에 배치되었다. 이 무렵 북한군 제2군단 병력이 영월로 진출함에 따라 연대는 14일 대야리로 이동하여 24일까지 치열한 교전 끝에 영월을 탈환했다.
2월 11일 개시된 중공군 제4차 공세(2월 공세) 때, 연대는 16일 북한군 제2군단의 집중 공격을 받고 평창 일대를 내주고 후방으로 후퇴했다. 적은 계속해서 영월을 점령하려고 기도했으나, 연대는 17~18일 양일간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의 공격을 저지했다.
유엔군의 킬러작전(2. 21.~3. 6.) 때, 연대는 평창-창동리 도로를 따라 공격하여 평창군 백석산 일대까지 진출했다. 유엔군의 리퍼작전(3. 7.~3. 31.) 때 연대가 소속된 제3군단은 조공으로 공격했고, 연대는 3월 6일 하진부리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다. 연대는 백석산과 백적산 일대에서 북한군 제27사단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3월 12일 하진부리를 점령하여 경강국도를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4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고, 연대는 공격을 전개하여 4월 22일까지 인제군 원통 일대까지 진출했다. 이 전투에서 박 상병은 분대원을 이끌고 앞장서서 공격하다 4월 16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명용 상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14판-5면-22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2-ㄱ-02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