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명옥(박명옥)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36469
  • 전몰일자 : 19510221

공훈사항

박명옥 일병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숭인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박 일병은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박 일병은 1950년 9월경에 입대 후 제7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1950년 7월 5일에 제7사단이 해체됨에 따라 제1연대는 수도사단에 편입되었고, 동년 10월 25일에 제9사단이 창설됨에 따라 제1연대는 제9사단으로 편입되었다. 따라서 제1연대 소속이었던 박 일병은 전후 행정처리 과정에서 소속이 제9사단 직할부대로 정리되었다.
국군과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힘입어 총반격작전으로 전환하였다. 아군은이 1950년 10월 19일에 평양을 점령하고 계속 북진하는 전황 속에서, 제9사단은 10월 25일에 서울에서 제28·제29·제30연대를 예하 부대로 두고 창설되었다. 한편 아군이 북으로 진격함에 따라 퇴로를 차단당한 적의 잔류 병력은 아군의 후방을 교란했다. 동시에 예기치 않은 중공군의 참전으로 인해 후방지역작전을 하던 미 제9군단과 예하 미 제2·제25사단은 청천강 선으로 투입되었다.
이후 제9사단은 11월 15일에 전북 금산군 남이면에서 1개 대대 규모의 공비를 소탕했고, 동년 11월 20일에는 상용리에서 적 200여 명을 포획 섬멸했다. 그리고 11월 23일에는 대둔산 대평리, 삼왕리를 포위 공격하여 산속 깊숙이 은거하고 있던 적을 소탕하고 적의 근거지를 제거하는 전과를 올렸다. 제9사단은 12월 19일부로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38도선 상의 강원 인제군 원대리-현리-서림을 잇는 선을 방어하였고 이후 12월 말까지 북한군 제2군단 소속의 유격부대와 격전을 벌였다.
이어서 12월 31일에 시작된 중공군 제3차 공세 당시 제9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사단은 원대리-서림을 잇는 방어진지에서 북한군 제10사단과 격전을 벌였다.
이후 상급 부대명에 의거하여 영월-삼척 선으로 철수한 뒤 정선군 창리 일대에 배치되었다. 연대는 창리 일대에서 중공군 2월 공세를 맞아 대략 10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을 격퇴하였으나 이 과정에서 박 일병은 적탄에 맞고 후송되었으나, 1951년 2월 21일 끝내 사망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명옥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0-ㅍ-81)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