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명옥(朴鳴玉)

  • 군별 : 육군
  • 계급 : 병장
  • 군번 : 2604101
  • 전몰일자 : 19510110

공훈사항

박명옥 병장은 전라남도 화순군 금지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50년 1월 초순 육군에 입대하여 국군을 건설한다는 자부심으로 훈련과 작전에 임했으며, 수도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박명옥 병장이 소속된 제1연대는 1950년 8월 북한군은 계속 남진해 기계와 포항을 점령하고 있었다. 연대는 북한군이 기계와 포항을 점령하자, 포항지구전투사령부에 편성되어 안강 및 포항지역으로 투입되었다. 박명옥 병장과 연대병력은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웠다.
북한군 제12사단이 비학산 일대에서 9월 공세를 시작하자, 박명옥 병장과 연대병력은 9월 4일 형산강 이남에서 북한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이어 박 병장과 연대 장병들은 9월 16일 반격작전으로 전환해 제3사단과 함께 10월 1일 38도선을 돌파한 후 10월 10일 원산을 점령하였다. 원산탈환작전을 완료한 박 병장과 장병들은 10월 16일부터 30일까지 영흥-함흥-성진 진격전을 전개하였다. 이 진격 전에서 그와 연대병력은 원산방어전에서 참패하고 패주하며 함흥 등 요지에서 아군의 진격을 지연하기 위해 강력하게 저항하던 북한군 제42사단 및 원산경비여단, 제5사단을 격파하고 16일 함흥, 30일에는 성진을 점령하는 대전과를 올렸다.
11월 말 길주에서 북한군을 소탕하는 수훈을 세웠으며 이때 북한군이 반격해 오면서 서서히 적정이 강화되기 시작하자, 박명옥 병장과 연대병력은 12월 14일 북청과 이원에서 함흥과 흥남으로 철수하던 중 벌어진 치열한 교전에서 적 병력을 앞장서서 저지한 후 17일 흥남에서 묵호항으로 해상 철수하였다.
박명옥 병장과 연대 장병들은 중공군의 제3차 공세를 맞아 1951년 1월 3일 양양 남쪽에 있는 원포리 일대에 진지를 점령한 후 북한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최후까지 사력을 다해 싸웠던 박명옥 병장은 1951년 1월 10일 송계리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명옥 병장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3판-6면-2788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4-ㅊ-04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