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명암(朴命岩)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375938
  • 전몰일자 : 19530714

공훈사항

박명암 하사는 1932년 2월 3일 경상북도 달성군 유가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이 발발하고 중공군의 개입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2년 11월 30일 제주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수도사단 제26연대에 배치되었다.
박명암 하사가 소속된 연대는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전투에 참여하여 북한군과의 공방전에서 북한군을 격퇴한 후 경기도 양주로 이동해 11월부터 9주간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을 실시하고 있었다. 부대정비와 훈련을 마친 연대는 강원도 사창리로 이동해 1953년 1월~7월 김화 동북지역의 금성전투에 참여하였다.
박 하사와 연대병력은 1953년 5월 14~16일 금성 서남쪽 7㎞ 지점 직목동 일대에 있는 샛별고지(470고지) 전투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격퇴하였다. 또 그는 5월 23~24 금성 서남쪽 4㎞지점에 있는 회고개 전투에서 중공군을 물리쳐 금성 돌출부(김화저격능성-금성 남쪽 중치령.회고개-교암산-지형능선-수도고지-949고지-973고지-833고지를 연하여 형성)일대의 주저항선을 고수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 결과 사단은 6월~7월 하소리에서 회고개까지 주저항선에 제1연대와 제26연대를 배치하고 제1기갑연대를 예비로 확보할 수 있었다.
한편 중공군의 최후 공세가 1953년 7월 13일 야간에 시작되었다. 그들은 포병사격을 맹렬히 가하면서 사단 방어지역으로 일제히 공격하였다. 연대는 13일 자정 경 전방진지가 유린되고 14일 새벽에는 전방대대 관측소가 북한군에게 공격을 받음으로써 주저항선이 붕괴되었다. 박 하사와 연대는 이 능선을 점령하여 새 주저항선을 구축하는 한편 미처 철수하지 못한 사단병력을 구출하였다.
박명암 하사와 연대병력은 만 2일간(7월 13일-7월 14일)의 전투에서 금성돌출부 좌견부 주저항선을 돌파당하고 117A본 도로 남쪽 능선에 저지선을 형성한 미 제3사단에 방어임무를 인계한 후 군단예비로 전환하여 부대의 재편성에 들어갔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투임무를 수행했던 박명암 하사는 1953년 7월 14일 김화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명암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9판-2면-03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7-ㅇ-07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