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명안(朴明安)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2805612
  • 전몰일자 : 19501114

공훈사항

박명안 이병은 경상북도 선산군 고산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 공산세력들의 침투 및 교란으로 사회가 혼란스럽던 1950년 3월 중순에 옹진반도의 제17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에 배치되었다.
제17연대는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고 병력의 열세와 지형의 불리한 조건에서도 용감하게 싸웠으나 26일 아침에 더 지탱하지 못하고 육군본부의 명령에 따라 인천으로 철수했다. 이후 연대 장병들은 대전의 육본경비 임무를 수행하다가 스미스특수임무부대가 투입될 때 갈곶리 전투에 참가하고, 이후 수도사단에 배속되어 보은-상주 일대에서 지연전을 수행했다. 그리고 8월 1일에 낙동강을 건너 안동에서 전투를 치룬 후 육군 예비가 되었다가 8월 중순에 포항지구전투사령부 소속으로서 낙동강방어선상의 기계-안강지역에 투입되었다. 이곳에서 연대는 9월 12일까지 북한군 제12사단과 일진일퇴를 거듭한 끝에 적의 공격을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박명안 이병이 소속된 제17연대는 육군 중에서 유일하게 인천상륙작전부대로 선발되었다. 연대는 9월 14일에 부산으로 이동하여 상륙함정에 승선했다. 그리고 미 제7사단에 배속되어 9월 18일에 인천으로 후속 상륙한 후에 영등포 남쪽으로 기동하여 서울의 동쪽 지역을 탈취하고자 했다. 그 결과 9월 25일에 신사리에서 서빙고로 도하하여 남산을 공격했고, 계속 동쪽 지역으로 공격하여 신속히 적들을 소탕했다.
국군과 유엔군 주력이 10월 1일을 기점으로 38선을 돌파하여 북진작전을 감행할 때, 박명안 이병이 소속된 제17연대는 서울에 남아 대통령실과 정부 청사 등 주요시설에 대한 경계임무를 수행했다. 아울러 서울 및 경기도 일대에 미처 도망가지 못하고 교란 활동을 일삼던 북한군 패잔병 소탕 임무도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가 소속된 대대는 11월 14일에 북한군 패잔병을 발견하고 소탕작전을 실시하여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적의 총탄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명안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6942 육)을 추서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7-ㅊ-04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