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명식(박명식)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644671
  • 전몰일자 : 19520503

공훈사항

박명식 하사는 1930년 8월 3일에 출생하였다(출생지 미상). 박 하사는 1951년 9월 27일에 입대 후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9사단 제30연대에 배치되었다.
유엔군과 북한군은 1951년 11월 27일에 현 전선을 잠정 군사분계선으로 하기로 합의하였다. 이에 따라 전선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고 큰 전투 없이 소규모 전초진지 전투와 전투정찰 위주의 탐색전을 1952년 전반기까지 지속되었다. 사단은 방어진지를 보강하면서 전투정찰과 수색·매복작전 등을 지속하였다.
국군 제2군단이 1952년 4월 5일에 재창설되어 전선에 투입됨에 따라 전선이 조정되어 사단은 미 제9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사단은 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고 제9사단은 4월 중순 강원 고성군 진부리 일대까지 진격했다.
이에 제9사단은 4월 25일부로 제3군단에 배속되어 강원 인제 동남방의 한석산, 가리봉 일대까지 진출했다. 제9사단은 소강상태에 들어가 아군의 관측과 기동에 제한을 주던 300고지를 기습하여 적의 방어시설을 파괴하는 데 성공한 후 적의 방어시설을 파괴하고 적병 일부를 사살 후 철수했다.
중공군은 5월 16일에 현리 일대의 국군 정면에 전투력을 집중하여 5월 공세를 개시했다.
이에 군단의 유일한 보급로인 오마치고개가 중공군에게 선점된 가운데 제9사단은 현리에서 적의 포위망을 뚫고,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험준한 방태산을 넘어 광원리-속사리로 철수했다. 이 과정에서 박 하사는 1952년 5월 3일에 수색작전 중 적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명식 하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1-ㄲ-032)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