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명식(朴明植)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10226

공훈사항

박명식 순경은 1926년 2월 26일 충남 대덕군 기성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충남도경 유성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대둔산에서 전사했다.
1950년 6월 28일 서울을 점령하고 7월 4일 한강 방어선을 돌파한 북한군이 파죽지세로 남진하자 유성경찰은 주요 시설 경비, 유성-공주, 유성-청주를 잇는 주요 보급로 경비, 피난민 이동 통제·구호, 오열 색출 임무를 수행했다.
비상경비총사령부는 7월 11일 제1대대(충남·서울경찰)를 청양에, 제2대대(충남·경기경찰)를 홍산에 배치하여 청양-대천 선에서 군과 함께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는 임무를 부여했다.
유성경찰이 소속된 제1대대는 청양에 제1중대, 정산에 제2중대, 대천에 제3중대를 배치했으나 예산과 홍성에 적이 침입하여 홍성-대천 지역이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제1중대는 예산 방면에서 남진 중인 적 유격대를 급습하여 20명을 생포했고, 홍성군 산성면에서는 적과 교전하여 포로 50명, 사살 2명의 전과를 거두었다.
7월 15일 제1대대장은 제1중대 130명을 직접 지휘하여 대천 방향으로 진격하여 집결해 있는 수십 명의 북한군을 포위 급습하여 사살 3명, 포로 2명의 전과를 거두었으며, 이 전투에서 지방 공비 40명을 사살했다. 그 후 박 순경이 소속된 유성경찰은 북한군의 남진에 따라 정읍을 거쳐 7월 21일 남원에 도착하여 7월 30일까지 다른 경찰병력(경남·서울·충남)과 함께 육십령 방어작전을 수행했다. 그러다가 북한군의 남진에 따라 산청-의령을 거쳐 8월 4일 함안에 도달하여 낙동강 방어작전에 임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9월 16일 국군·유엔군의 반격작전이 개시되자 유성경찰은 10월 2일 유성경찰서를 수복하고 지역 내 치안을 유지하며 잔적소탕작전을 실시했다. 인천상륙작전과 국군·유엔군의 총반격으로 퇴로가 차단된 북한군들은 가까운 산지로 들어가 공비들과 합류하여 게릴라 활동을 전개했다.
1951년 2월 25일 대둔산에 수십 명의 공비들이 출현하여 양민을 학살하고 가축과 식량을 약탈한다는 정보에 따라 비상경비총사령부는 충남·전북지역의 경찰을 투입하여 공비들을 소탕하도록 했다. 대둔산에 투입되어 정찰을 하던 유성경찰은, 2월 26일 10여 명의 공비들과 조우하여 쌍방 간 교전이 벌어졌다. 박 순경은 공비 1명을 사살하고 계속해서 작전을 수행하다가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명식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경찰2묘역-513판-2996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5-ㄷ-074)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