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명술(朴明述)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사
  • 군번 : 1602233
  • 전몰일자 : 19500629

공훈사항

박명술 중사는 1921년 6월 26일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정부수립 후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조국과 자유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1949년 5월 31일 경기도 부평에 위치한 육군직할 제1공병단에 현지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부대인 제9야전공병대대로 배치되었다.
제1공병단은 1948년 8월 19일 경기도 부평에서 제1공병대대와 제1자동차중대, 제1정비중대, 제1공병기지중대, 공병중공장중대, 경장비중대를 통합하여 창설되었고, 6·25전쟁 발발 당시는 제1건설공병대대, 제9야전공병대대, 창고중대, 제1정비중대로 편성되었다. 박명술 중사는 38도선 일대의 진지구축과 장애물 설치작업에 전념했다.
6·25전쟁 발발하자 박명술 중사가 소속된 제1공병단 제9야전공병대대는 창동, 미아리 방어선에 투입되어 대전차 육탄공격반을 편성하여 적 전차에 돌입하여 전차를 파괴하기도 했다. 제1공병단은 경인선 철교(상·하행선) 폭파 임무를 부여받았다. 1950년 6월 28일 오전 1시 45분경 북한군 전차가 돈암동에 진입했다는 보고를 받은 육군 총참모장은 지체없이 한강교를 폭파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오전 2시 30분 한강교는 폭파되었다. 하지만 경인선 철교는 원인 불명으로 불발되고 말았다.
한강방어선 전투 때 제1공병단은 6월 29일 공병학교 장병들과 함께 혼성 대대로 편성되어 노량진의 한강 인도교와 대방동 삼거리에 이르는 강변에 배치되었다. 장병들은 반파상태에 있는 경부선 철교에 폭약을 장전하고 폭발시켰으나, 복선의 남단에 있는 교대와의 연결부분이 약간 이탈하는 정도에 그치고 말았다.
공병단 장병들은 이곳에서 적의 도하 공격을 6일간이나 지연시켰으나, 북한군이 완파되지 않은 경부선 철교를 수리하여 전차를 통과시킨 후 노량진으로 쇄도해 옴에 따라 수원-평택으로 지연전을 펼치면서 철수했다. 박명술 중사는 노량진전투에서 장애물을 설치하며 적의 도하공격을 저지하다가 적탄에 맞아 6월 29일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명술 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위패(23판-3면-249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비(080-ㅇ-02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