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명순(박명순)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215515
  • 전몰일자 : 19530117

공훈사항

박명순 중위는 1931년 3월 17일에 전라북도 진안군 사귀면 시정리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지루한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1년 3월 중순에 부산 동래의 육군종합학교로 입교하여 18주간의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7월 2일부로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제2사단 직할부대인 공병대에 배치되었다.
박명순 중위가 부대에 배치되었을 때, 제2사단은 적근산-육단리를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이후 사단은 공세 행동으로 10월 13일부터 18일까지 방어진지 전방의 감제고지를 공격하여 금성천 분지를 확보했다. 이후 전선은 1952년으로 넘어가면서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박명순 소위가 소속된 제2사단은 1952년 6월 30일부로 미 제9군단에 재배속되어 김화 동쪽의 남대천 일대 주저항선에 배치되어 있던 미 제40사단으로부터 방어진지를 인수했다. 당시 전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고, 공산군은 휴전협상에서 지연전술을 쓰며 군사력 증강에 노력을 집중했다. 따라서 유엔군사령관은 공산군의 공격의지를 분쇄하고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예하 부대에 공세적인 행동을 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제2사단은 오성산에 남쪽 남대천 부근에 솟아오른 해발 580미터의 무명능선(저격능선)을 공격하기로 했다. 사단은 10월 14일에 공격을 개시하여 저격능선을 탈취했으나, 중공군의 역습으로 다시 빼앗겼다. 이러한 고지쟁탈전은 11월 24일까지 계속되었다. 당시 박명순 중위가 소속된 공병중대는 전방연대를 직접지원하며 공격을 선도했다. 공병부대는 항상 공격작전 시에는 최전방에서 장애물을 개척하며 공격을 선도하고, 방어작전 시에는 장애물을 설치하여 적의 공격을 지연시키는 임무를 수행했다. 저격능선을 직접 공격하는 전방 연대는 공병지원에 힘입어 마침내 저격능선을 탈취했고, 중공군은 큰 피해를 받고 물러나서는 더는 공격하지 않았다.
사단은 12월 1일부로 사창리로 이동하여 부대정비 및 재편성을 실시하고, 야외기동훈련에 전념했다. 그리고 작전지역에 대한 주기적인 수색정찰 활동을 통해 적 침투를 거부했다. 박명순 중위가 지휘하는 공병소대는 1953년 1월 17일에 방어지역 전방에 대인지뢰 장애물을 설치하다가 적 침투부대의 기습을 받고 즉각적인 응사로 격퇴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명순 중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장병2묘역-212판-5430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2-ㄴ-01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