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명수(朴命洙)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2653
  • 전몰일자 : 19510620

공훈사항

박명수 일병은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박 일병은 1951년 1월경 입대한 후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 후 제8사단 제21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일병이 부대에 전입했을 당시, 제8사단 제21연대는 유엔군과 같이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1월 25일을 기해 일제히 반격 작전을 개시했다. 제21연대를 비롯하여 사단과 소속 연대들은 1951년 2월 4일부터 집결과 함께 진격을 개시했다. 아군과 적군은 고지 선점을 위한 수일간의 치열한 전투를 전개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사실 중공군의 유인책이었으며, 1951년 2월 11일부터 중공군 제4차 공세가 전개되었다. 제21연대를 포함하여 사단과 모든 연대는 중공군에 고립된 채 후방이 포위되었다. 제8사단은 포병 1개 대대와 전차 5대로서 포위를 벗어나려 했지만 중공군의 대대적인 대규모 공세에 결국 소부대로 분산되며 철수하게 되었다. 제21연대를 비롯하여 사단 각각의 연대는 서로 다른 곳에서 부대정비에 돌입하게 되었다. 제21연대는 앞선 전투에서 장교 약 300여 명과 사병 약 7,000여 명이 전사 및 실종되어 남은 인원이 3,000여 명에 불과하게 되었다.
제8사단은 전력보충 이후, 1951년 4월 3일 호남지구의 공비토벌작전을 위해 전라북도 전주시로 이동했다. 당시 전라도 일대에 지역 좌익 및 북한군 낙오병이 합세하여 공비가 약 3,000여 명에 달했다. 제21연대는 1951년 4월 16일부터 충남 경찰 소속 제18전투경찰대와 함께 충청남도 금산군 대둔산의 공비토벌에 나섰다.
토벌대는 일대의 고지를 차례로 점령해나가고 인근의 민가를 수색하며 거점을 확보했다. 이후 제8사단은 5월 19일 충청북도 제천군으로 이동하여, 미군 제10군단 제3사단의 예비대로 준비태세를 갖추는 한편 후방을 경계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박 일병은 충청도 일대의 공비 및 북한군 잔존세력을 토벌하다 큰 부상을 입고 1951년 6월 20일 사망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명수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08판-04면-23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2-ㄷ-02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