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명수(朴命守)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1505562
  • 전몰일자 : 19530408

공훈사항

박명수 이등상사는 1929년 9월 6일에 경상남도 동래군 장안면에서 출생하였다. 박 이등상사는 1949년 2월 27일에 입대 후 제7사단 제5연대에 배치되었다. 1950년 7월 5일에 제7사단이 해체됨에 따라 제5연대는 수도사단에 편입되었고, 동년 10월 25일에 제9사단이 창설될 때 연대의 제2대대가 제9사단으로 편입되었다.
따라서 제2대대 소속이었던 박 이등상사는 전후 행정 처리과정에서 소속이 제9사단 제29연대로 정리되었다.
유엔군과 적군은 1951년 11월 27일에 현 전선을 잠정 군사분계선으로 정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전선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어 큰 전투 없이 소규모 전초진지 전투와 전투정찰 위주의 탐색전이 1952년 전반기까지 지속되었다.
제9사단은 1952년 4월 19일에 사단 정면에 위치하여 아군의 관측과 기동에 제한을 주던 300고지를 기습하여 적의 방어시설을 파괴하는 데 성공했다.
제9사단은 1952년 6월 21일에 대규모의 포로획득과 더불어 북한군의 공격 기도를 분쇄하기 위해, 중공군 1개 연대병력 3,500여 명이 방어하고 있던 제9사단 정면의 500고지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적의 완강한 저항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9월에 접어들어 휴전회담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제9사단과 중공군의 고지 쟁탈전이 격화되었다. 사단은 10월 6일부터 백마고지전투에서 중공군 제38군 예하 제114·제112사단과 12차례의 백병전이 거듭되는 치열한 공방전을 펼친 끝에 마침내 적의 공격을 격퇴했다.
제9사단은 6·25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이 전투를 승리로 장식함으로써, 철의 삼각지 서남부에서 전술적 우위를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전투를 마친 제9사단은 1953년 10월 26일에 진지를 미 제3사단에 인계하고 사창리에서 부대정비를 한 뒤 11월 25일에 제2사단 진지를 인수하여 김화지구의 저격능선 일대를 맡게 되었다.
제9사단은 1953년에 들어 포격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고자 주저항선과 전초기지의 교통호를 물결형으로 보강하는 한편, 전 유선망을 교통호 지하에 매설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박 이등상사는 1953년 4월 8일에 적의 기습에 당해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명수 이등상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0-ㅎ-030)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