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명선(朴明善)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245321
  • 전몰일자 : 19510501

공훈사항

박명선 하사는 1927년 4월 8일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에서 출생했다.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박 하사는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그는 1950년 10월경 부산에 있는 제2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2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하사가 부대에 배치되었을 때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하고 있었고, 제3사단은 동해안 축선에서 진격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연대는 11월 11일 길주-백암-혜산진으로 북진하여 30일 한·중 국경선의 혜산진에 도달했으나, 이날 하달된 상급부대의 철수명령에 따라 12월 10일 흥남에서 해상철수를 개시하여 구룡포에 상륙했다.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12월 31일 중공군은 제3차 공세를 감행했고, 1951년 1월 4일 국군과 유엔군은 서울을 포기하고 수원-이천-원주 선까지 철수하게 되었다. 이때 연대는 북한군 제10사단의 집중공격을 받고 평창으로 철수했다. 연대는 1월 15일부터 19일까지 영주 남대리 부근으로 침투한 북한군 제31사단을 격멸했다. 2월 11일 중공군은 제4차 공세(2월 공세)를 감행했고, 연대는 횡성의 섬강 일대에서 중공군 제197사단과 혈전을 벌였다.
이후 국군은 공세로 전환하여 3월 7일부터 리퍼작전을 전개했고, 연대는 제3군단에 배속되어 3월 말 38도선 상의 현리 일대까지 진출했다. 4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고, 연대는 4월 중순 한계리 일대까지 진격했다.
4월 22일 시작된 중공군 제5차 공세(4월 공세) 때 연대는 인제의 한석산, 매봉 일대에서 북한군 제6사단과 치열한 격전 끝에 결국 주방어선인 한석산, 가리봉 일대를 지켜냈다. 이 전투에서 박 하사는 분대원을 이끌고 진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적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5월 1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명선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6판-8면-00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6-ㅋ-09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