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명래(朴明來)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805

공훈사항

박명래 경사는 1924년 11월 25일 충남 홍성군 홍북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곡성 철도경찰 소속으로 재직 중 포항에서 전사했다.
1949년 4월 22일 내무부 치안국은 치안국 직속으로 철도경찰본대를 두고 용산, 청량리, 인천, 개성, 대전, 곡성, 광주, 목포, 순천, 대구, 안동, 부산에 지방철도경찰대를 설치하여 운영했다. 철도경찰에게 부여된 주 임무는 철도역과 교량·연선(沿線)·터널 등 철도시설의 경계였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철도경찰대 본대는 모든 지방철도경찰대에 전투태세를 갖추도록 명령했다. 곡성철도경찰은 곡성역 일대에 대한 경비를 강화하며 곡성-장항, 곡성-대전을 잇는 철도 경로 상의 교량·연선(沿線)·터널 등 철도시설의 경계에 임했다.
6월 28일 서울이 함락되자 국군은 한강 이남으로 철수하여 7월 3일까지 한강방어선에서 적의 남진을 지연하고자 했으나 실패했고, 북한군은 7월 4일 한강방어선을 돌파하여 파죽지세로 남진했다.
동해안 삼척지구에 해상으로 침투한 북한군 제766유격부대는 강릉지구의 군경부대가 철수하자 6월 29일 죽변에 상륙했다. 이 중 2개 중대가 6월 30일 울진 전방에 진출하였으며, 경찰부대는 지연전을 펼치며 적의 전진을 저지했다.
포항경찰은 인천상륙작전이 개시되기 전까지 오열 색출, 포항-영덕, 포항-경주-포항-울산 간 주보급로 경비, 주요 시설 경비, 철도경비, 치안유지, 피난민 이동 통제·구호 임무를 수행했다.
동부지역의 적 766유격대는 7월 5일 경북 북부지역 봉화군 일대에 잠입한 이래 동해안 일대의 주요 거점을 근거지로 하여 아군의 후방을 교란했다. 이들은 동해안 산악지대를 따라 남진하는 동안 아군의 주요 방어거점에서 전투력을 약화시키려 했다. 8월 4일 영덕 접경지역을 은밀히 관통하여 8월 5일 포항 수도산에 도달한 적은 포항역을 폭파하여 포항을 중심으로 한 보급선을 파괴하려 했다. 적 침투에 관한 정보를 입수한 아군은 8월 5일 오전 5시 포항경찰과 국군 3사단 예하 1개 대대병력을 투입하여 포위망을 좁히던 중 오전 7시에 전투가 벌어졌다. 이날 박 경사는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적을 격퇴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명래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3-ㅋ-012)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