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명기(박명기)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736090
  • 전몰일자 : 19510424

공훈사항

박명기 일병은 경상남도 울산군 청양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작전을 진행 중이던 1950년 10월 중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5연대에 배치되었다.
박명기 일병이 소속된 사단은 한국전쟁이 개시된 이후 6개월 동안 전황의 추이에 따라 임진강-낙동강-청천강으로 이동하였다가 다시 임진강변으로 철수함으로써 두 번이나 이 지역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게 되었다. 박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방어가 취약한 전방연대의 전투지경선 부근을 보강함과 동시에 유사시 전방연대들의 철수를 신속히 엄호하기 위하여 적성 남쪽의 마지리 일대에 배치되었다. 부대 장병들은 방어진지를 강화하기 위하여 지뢰와 철조망을 가설하는 동안 수색대를 강북으로 파견하여 적정을 탐지하는데 주력하였다.
박명기 일병과 연대병력은 1950년 12월 31일 임진강 남쪽에 교두보를 확보한 중공군은 후속부대를 도하시켜 연대를 추격하기 시작하였고, 또 일부 중공군은 적성 남쪽 진지로 접근하며 추격해왔다. 이로 인해 박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사격도 하지 못한 채 방어진지 일부를 돌파당하였고, 중공군이 내륙 깊숙이 침투함으로써 사단의 우전방 지역에 돌파구가 형성되었다. 이때부터 부대 장병들은 밤새도록 돌파구 확대를 기도하는 중공군을 맞아 총력전을 펼쳤다.
이후 중공군의 제3차 공세가 시작되면서 박명기 일병이 소속된 사단은 1951년 1월 4일 서울에서 37도선 평택까지 철수한 후 수원, 의왕 거쳐 한강 서울 재탈환작전에 참전하여 3월 15일 서울을 재탈환하였다. 그 후 박 일병은 연대병력과 38도선 부근을 향해 진격을 계속하였고, 제6중대의 도하를 시작으로 16일 한강을 도하 하여 시내로 진출함으로써 서울 전역을 장악하였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박명기 일병은 1951년 4월 24일 파주 부근 전투에서 북한군의 기습을 받아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명기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6판-6면-06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10-ㅌ-08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