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명근(朴命根)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729

공훈사항

박명근 순경은 1926년 1월 9일 전남 여천군 소라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전남도경 장성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장성에서 전사했다.
제주 4·3사건(1948년)과 이듬해 여·순 사건으로 인하여 안보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방공비 세력이 증가하자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을 단행하기로 했다. 박 순경은 3단계(제1단계: 1949.10.30-11.30, 제2단계: 12.1-12.15, 제3단계: 1949.12.16-1950.2.28.) 토벌작전에 참여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기습남침을 감행하자 치안국은 전시 비상경비총사령부 체제로 전환했다.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6월 28일 서울이 함락되고 군경부대가 남쪽으로 후퇴함에 따라 장성경찰은 장성-고창, 장성-정읍, 장성-담양을 잇는 군 주보급로 경비, 주요 시설 경비, 오열 색출 임무를 수행했다. 한강방어선을 돌파한 북한군이 계속 남진하자 전남경찰국은 각 서(署)에서 일부 병력을 차출하여 전북경찰국에 배속하고, 나머지 병력으로 전투부대를 편성했으며, 장성경찰서 병력도 전투경찰로 재편되었다.
북한군 제6사단이 호남지역에 투입되어 7월 16일 금강을 도하하여, 일부는 곡성-전주로, 일부는 김제-정읍-장성-광주를 향하여 남진했다. 이에 육군본부는 7월 17일 서해안지구 전투사령부를 설치하고, 전북·전남 편성관구사령부와 신편 제7·제5사단, 경찰 등을 배속하여 지역방어임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북한군 제6사단은 7월 20일 전주를 점령하고 잠시 부대를 정비한 후 7월 22일 공격을 재개했다. 북한군 제13·제15연대는 국군과 경찰의 저항을 뚫고 7월 23일 장성·광주를, 24일 화순·나주·장흥을 점령하고 보성 방면으로 진출했고, 제1연대는 24일 남원을 점령 후 구례-순천으로 남진했다. 북한군의 남진에 따라 장성경찰은 지연전을 펼치며 계속 후퇴하여 7월 29일 보성에 도달했다. 이곳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있던 장성경찰과 북한군 제15연대 병력 간 전투가 벌어졌다. 박 순경은 적을 격퇴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명근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9-ㄹ-012)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