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만회(朴晩會)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400284
  • 전몰일자 : 19501130

공훈사항

박만회 일병은 1926년 9월 23일 경상북도 영일군 동해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9월 하순 육군에 입대하여 수도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박만회 일병은 낙동강전선에 투입되었다. 박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경주 북방에 있는 낙산(호명리)으로 철수해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이후 9월 말 양양까지 진격하면서 38도선을 회복하였다. 박 일병과 장병들은 10월 1~9일 사이에 양양-간성-양구-화천-회양-신고산-안변을 거치면서 북한군을 소탕해 원산을 점령하였다. 그들은 10월 10일 시가 중심부 서측방에 우뚝 솟아 있는 여왕산을 최초의 공격목표로 부여받았다. 그러나 공격작전의 진행 과정에서 원산 시내에서의 전투지경선이 불투명하여 원산시가에서 두 번씩이나 다른 사단과 서로 교차 진출하게 되거나 전투지경선을 침범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한 가운데 산속의 과수원 일대에 잠복하고 있던 북한군의 전차포 3문과 직사포의 포격으로 진출이 저지되었다.
다음날(11일) 새벽 공격을 재개하여 북한군의 야포 박격포, 소화기 사격을 받으면서 시 중심가를 뚫고 저녁때에는 원산역 북쪽의 적전천 제방까지 진출하였으며, 박만회 일병과 장병들은 시내에 남아 있는 잔적을 소탕하는 한편 비행장 경비를 강화하였다. 이후 계속 함북지역인 고원-흥남 방향으로 진격하여 퇴각하는 북한군을 추격해 사살하였다. 이후 11월 백암-청진 선으로 진출하였으며 11월 말에는 길주에서 북한군을 소탕하는 수훈을 세웠다.
박 일병은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오직 위기에 처한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전투에 임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박만회 일병은 1950년 11월 30일 청진 부근 전투에서 매복해 있던 북한군의 기습사격을 받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만회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3판-6면-11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4-ㅋ-02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