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만호(박만호)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48769
  • 전몰일자 : 19511214

공훈사항

박만호 일병은 1927년 3월 24일 출생했다(출생지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조국이 다시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일어섰다. 박 일병은 1951년 2월 3일 부산에 있는 제2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본부중대에 배치되었다.
박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유엔군이 37도선으로 철수하여 재정비 중이었고, 제7사단은 영월 일대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었다. 유엔군의 킬러작전(2. 21.~3. 6.)과 리퍼작전(3. 7.~3. 31.) 때 사단은 하진부리를 점령했다. 4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다. 이때 사단은 인제 서쪽의 관대리까지 진격했으나, 중공군 4월 공세(4. 22.~30.)에 밀려 인제 서남방 소양강 변의 정자리 일대까지 후퇴했다. 5월 16일 시작된 중공군 5월 공세 때 사단은 압도적인 적의 공격에 밀려 풍암리까지 후퇴했다.
북한군의 5월 공세를 저지한 유엔군은 공세로 전환했다. 이때 사단은 6월 7일부터 12일까지 양구 서북방의 군량현 일대에서 적과 치열한 교전 끝에 ‘신 캔자스선’ 상의 마석봉-504고지-757고지를 잇는 선을 확보했다. 사단은 8월과 9월 동안 양구 북쪽 백석산 남쪽의 917고지, 883고지, 892고지 전투에 투입되어 격전 끝에 이들 고지를 확보했다.
사단은 미 제2사단의 단장의 능선 탈취에 유리한 여건을 만들기 위해 9월 24일 백석산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으나, 북한군 제32사단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끝내 고지 탈취에 실패하고 28일 동 임무를 제8사단에 인계 후 양구 일대로 이동하여 부대정비를 했다.
사단은 11월 20일 다시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백석산 북방의 1,090고지~931고지~암동~319고지를 잇는 제8사단의 전선을 인수했다. 사단은 진지를 보강하면서 큰 전투 없이 수색정찰, 매복, 적진 교란작전 등을 지속했다. 박 일병은 12월 14일 사단사령부 경계 중에 적 침투부대의 기습을 받고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만호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위패(23판-32면-17149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8-ㄷ-04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