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만현(朴萬鉉)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83630
  • 전몰일자 : 19510212

공훈사항

박만현 일병은 경기도 인천광역시 만석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박 일병은 1950년 12월 23일에 입대한 후 제주도에 있는 제5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8사단 제21연대에 배치되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 발발 당시 제21연대는 후방에 침투한 북한의 무장유격대 토벌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하지만 전면에서 북한군의 기습남침이 시작되었고 아군은 지연전을 펼치며 후퇴해 방어태세를 강화하였다. 이후 제8사단은 낙동강 전선에서 반격을 개시하여 1950년 10월 38도선을 넘어 북진하지만 1950년 11월부터 중공군의 대대적인 공세에 방어전을 진행하였다.
제8사단 장병들은 1950년 12월 31일부터 북한군과 중공군의 제3차 공세에 직면했다. 제8사단은 당시의 혹한과 강설로 진지 구축을 제대로 할 수 없었지만, 적의 주 접근로에 지뢰와 장애물을 설치하여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제8사단 장병들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좌·우측 전선이 돌파되었기에 강원도 홍천군 방면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이후 제21연대 장병들은 1951년 1월간 홍천군 양덕원리에서 중공군의 공세를 방어했다. 혹한에 접어든 태백산맥의 능선에서 고지전이 전개되었다. 제21연대 장병들은 2월에 접어들어 강원도 횡성군에 주저항선을 설치하고 적의 공세에 대비해 방어진지를 철저히 구축했다. 또 적의 주 접근로에 지뢰와 장애물을 설치하여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중공군 2월 공세가 1951년 2월 11일부터 전개되었다. 중공군은 이때까지 소수 병력으로만 저항을 시도했다. 그러나 적군은 1951년 2월 12일을 기점으로 대병력을 투입하였고, 특히 전선에 있던 제8사단이 적군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이어 아군 전선은 대대적인 포격이 가해져 모든 연대가 포위상태에 들어갔다. 많은 전력을 손실한 제8사단은 주포리로 지휘소를 옮기며 철수하였고 분전에도 불구하고 막강한 화력 차로 철수하게 되었다. 하지만 박 일병은 1951년 2월 12일 중공군 2월 공세가 시작된 다음날, 전투 중 총탄에 맞아 횡성에서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만현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23판-4면-12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1-ㄷ-043)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