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만준(朴萬俊)

  • 군별 : 해병
  • 계급 : 하사
  • 군번 : 9201454
  • 전몰일자 : 19510423

공훈사항


박만준 하사는 제주시 북구 애월읍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1949년 8월 1일 진해 해병대 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 군사훈련 과정을 마친 후 1949년 12월경 제1대대에 배치(1950년 12월 부대개편 후 해병대 제1연대 예속)되었다.
박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제주도에는 100명 내외의 공비들이 한라산을 근거지로 하여 유격전을 펼치고 있었으며, 해병대는 공비들을 소탕하기 위해 훈련을 강화하고 있었다. 박 하사가 소속된 제1대대는 1950년 2월부터 6월까지 공비토벌작전에 참가하여 제주도의 치안을 유지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후 박 하사가 소속된 제1대대는 장항·군산·이리지구 전투(1950.7.14.-7.20.), 함양·진주지구 전투(1950.7.23.-7.31.), 진동리지구 전투(1950.7.31.-8.13.), 통영지구 전투(1950.8.17.-8.19.)에 참가하여 적의 공격을 둔화시키는데 기여하였다. 통영상륙작전은 해군·해병대가 최초로 성공시킨 단독 상륙작전이었을 뿐만 아니라 6·25전쟁 이래 후퇴와 철수를 반복하며 방어만 하던 중 유일한 공격작전이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통영지구 전투 후 대대는 인천상륙작전(1950.9.15.-9.17.), 경인지구 전투(1950.9.20.-10.5.)에 참가하여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함으로써 서울을 수복하고 중부지역에서 북한군의 전투력을 약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후 대대는 원산·동해안지구 전투(1950.10.27.-12.15.), 영덕지구 전투(1951.1.25.-2.13.), 영월지구 전투(1951.2.19.-3.15.), 홍천지구 전투(1951.3.18.-4.3.)에 참가하여 북상하던 북한군 패잔병들을 소탕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국군과 유엔군이 춘천 북쪽의 38도선을 돌파하여 화천 방면으로 기동함에 따라 홍천지구 전투가 끝난 후 해병대 제1연대는 화천으로 기동했다. 북한군은 화천저수지와 북한강을 천연적인 방어선으로 설정하여 아군의 공격을 지연시키려고 했다. 대대는 4월 23일 작전을 개시하여 화천저수지 수문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으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후퇴하는 과정에서 중공군과 교전이 벌어졌는데, 이때 박 하사는 분대를 지휘하여 용감하게 적을 물리치다가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만준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를 국립서울현충원(49판-5면-077호)에 모시고 있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2-ㅍ-002)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