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만용(朴萬龍)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9703703
  • 전몰일자 : 19500915

공훈사항

박만용 이병은 1933년 4월 1일 경상북도 달성군 공산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으로 후퇴하여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하고 있던 1950년 8월 18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5연대에 배치되었다.
박만용 이병은 다부동 전투에 투입되었다. 박 이병이 소속된 연대는 8월 29일까지 고령에서 함창에 이르는 낙동강 전선에 북한군 3개 사단의 집요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328고지-수암산-유학산-741고지의 방어선을 확보하고 다부동-대구 접근로를 방어하여 대구 고수에 큰 수훈을 세웠다. 가산을 점령한 북한군 제13사단과 제1사단이 다부동 남쪽 도로룰 차단하고 대구산 도로를 감제하는 570고지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산 및 570고지 일대에는 유엔 전폭기가 수시로 출격하여 폭격하였으므로 북한군은 적극적인 공세 행동을 하지 못하였다. 그들의 막강한 저항에 부딪친 북한군은 현풍-왜관-328고지-수암산-유학산-신주막 선에서 저지되었다.
사단은 8월 30일 전투지경선을 조정하고 741-팔공산 북방 중앙선까지 담당하여 대구 북쪽의 방어진지 편성에 주력하였으며, 박만용 이병과 장병들은 팔공산 북방 정면에 배치되었다. 9월 4일 북한군 제3사단이 부대 간격을 따라 왜관-다부동 도로 남쪽 464고지로 침투하고 있었으며, 좌측방 왜관도 무인지경이 되고 우측방 에서는 북한군 제13사단이 다부동까지 진출하고 있었다. 가산으로 진출하려던 박 이병과 연대병력은 북한군 제1사단 1개 대대의 완강한 저항을 받아 철수하고 말았다. 가산(902m)은 대구 북쪽 16km에 위치한 중요한 감제고지로서 다부동-대구 간 도로와 대구까지도 감제하여 전술적으로 중요하였으므로 쌍방은 가산을 탈환해야만 하였다. 이후 9월 10일 북한군 제1사단이 가산 일대에서 공격을 재개하여 일부 병력을 도덕산(660m)일대로 남진시키고 일부 병력을 팔공산 일대로 진출시키고 있었다. 사단은 기병사단과 협조하여 북한군에게 큰 타격을 주며 9월 14일에는 가산성 가장자리까지 진출하였다.
박 이병과 장병 모두는 혼연일체가 되어 투혼을 발휘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던 박만용 이병은 1950년 9월 15일 팔공산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만용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11-ㅈ-07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