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만오(朴滿五)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1965
  • 전몰일자 : 19500709

공훈사항

박만오 일병은 경상남도 동래군 장안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을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9년 6월경 제3사단 제5연대에 입대했다. 동년 7월 10일 제5연대는 제2사단으로 예속이 변경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대전에 위치하고 있던 제2사단은 휴가나 외출·외박 중인 병력을 긴급 소집하여 부대가 편성되는 대로 포천 축선에 투입되었다. 박 일병과 제5연대(-) 장병들은 의정부 북방의 축석령으로 투입되었다. 그러나 제5연대는 전투준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중화기 실탄이나 수류탄은 한 발도 없었고, 소총탄도 M1 소총 8~16발, 카빈 소총 15~30발을 휴대했을 뿐이었다. 축석령 지역으로 투입된 북한군은 전날 송우리에서 국군 제3연대(-)를 격파한 제3사단과 제107전차연대였다.
제5연대는 6월 26일 3시에 사단지휘소가 설치된 금오리를 출발하여 이동하던 중 본자일 일대에서 적 전차와 조우했다. 연대는 인근의 208고지를 점령, 급편방어로 전환하여 적 전차의 공격에 겨우 소총으로 응수하면서 30분간 교전하였으나 돌파당하고 말았다. 제2사단에 배속된 포병학교 제2포병대대의 직사포 공격으로 적 전차부대가 잠시 물러난 사이 제5연대는 병력을 수습하여 다시 축석령 방어에 임했다. 그러나 곧 적의 강력한 보전협동 공격에 직면했고, 연대 장병들은 분전했으나 절대적인 전투력의 열세로 의정부 남쪽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연대는 27일 창동 방어선에 투입되어 적의 진출을 저지하고 수도 서울을 방어하기 위해 혈투를 벌였으나, 적 전차를 막을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전차에 의해 또다시 돌파당할 수밖에 없었다. 연대 장병들은 분산 철수하여 28일 광나루에서 한강을 건넜다.
연대는 29일 밤 수원에서 긴급 재편성을 한 후, 시흥지구전투사령부 예하의 혼성 제2사단에 편성되어 30일 말죽거리 동쪽의 95고지 부근에 배치되었다. 제5연대는 30일 북한군 제3사단 제8연대의 남진을 지연했고, 7월 1일 과천 일대로 철수하여 적의 공격을 저지했다. 7월 3일 제2사단은 과천 지역을 제3사단에 인계했고, 연대는 안양 남쪽의 426고지에 배치되었다. 7월 4일 북한군 제4사단은 안양 읍내로 진출한 후 곧이어 전차를 앞세우고 제5연대 진지에 공격을 가했다. 연대는 가용한 전 화기를 적 전차에 집중했으나, 적 전차는 손상 없이 연대 진지를 돌파하여 남진했고, 연대는 수원으로 철수했다. 이 전투에서 박 일병은 용감하게 앞장서서 싸우다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7월 9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만오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위패(12판-5면-10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8-ㅁ-01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