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만영(박만영)

  • 군별 : 육군
  • 계급 : 중령
  • 군번 : 204507
  • 전몰일자 : 19510221

공훈사항

박만영 중령은 1927년 4월 11일 출생했다(출생지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박 중령은 예비역 장교였으나, 1950년 10월경 재소집에 응하여 육본직할 제1201건설공병단에 배치되어 복무하다, 제1103야전공병단으로 전속되었다.
박 중령이 제1103야전공병단에 전속될 무렵 유엔군이 38도선 이북으로 진격하고 있었고, 제1103야전공병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후방지역에서 잔적 소탕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제1103야전공병단은 북진작전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1950년 11월에 창설되어 제3군단을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제3군단은 1950년 10월 16일, 서울에서 신편된 제5사단(1950. 10. 8. 재창설, 대구)과 제11사단(1950. 8. 27. 창설, 영천)을 배속받아 창설되었다. 창설 후 군단은 서울-춘천-인제-양양 선 이남의 유엔군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하여 12월 10일까지 공비토벌작전을 했다. 이때 야공단은 전투 사단의 작전을 보장하기 위해 교량 및 보급로 보수, 산악지역의 도로개설 등의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고, 때로는 직접 전투에 참가하기도 하면서 군단의 작전을 지원했다.
유엔군이 중공군의 공세에 밀려 38도선으로 철수하면서 제3군단은 12월 중순 양평으로 이동하여 제2·5·8사단을 배속받아 최초로 가평-춘천 정면의 전선에 투입되었다. 12월 31일 시작된 중공군 3차 공세 때 군단은 적의 집중적인 공격에 밀려 영월 일대로 철수했다. 이 과정에서 공병단은 전투 병력의 신속한 기동과 철수를 보장할 수 있도록 도로와 교량 보수에 주력했다. 박 중령은 공병 장교로서 위험을 무릅쓰고 다양한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군단 작전에 크게 기여했으나, 이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후송되었다.
박 중령은 곧 부상에서 회복되어 육본 직할부대에 재배치되었다. 그는 전방 야전 부대들의 작전 지원을 위해 동분서주했으며, 1951년 2월 21일 영월 일대의 교량 보수 임무를 수행하다 적의 기습을 받고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만영 중령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125-ㄴ-06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