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만식(朴萬植)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145646
  • 전몰일자 : 19511025

공훈사항

박만식 하사는 1923년 1월 14일 경상북도 경주군 감포면에서 출생했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국군이 낙동강 선까지 철수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박 하사는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그는 1950년 9월 초순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2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하사가 연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북한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하고 있었고, 제3사단은 포항 일대에서 북한군 제5사단과 공방전 중이었다. 박 하사와 장병들은 이곳에서 적의 최후 공세를 저지했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16일 총반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연대는 파죽지세로 나아가 강릉(30일)을 탈환하고, 10월 2일 38도선을 돌파하여 일일 평균 24km의 속도로 북진하여 10월 10일 원산을 점령했다. 연대는 11월 11일부터 길주-백암-혜산진으로 북진했으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12월 10일 흥남에서 해상철수하여 구룡포에 상륙했다.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12월 31일 중공군은 제3차 공세를 감행했고, 이때 연대는 북한군 제10사단의 집중공격을 받고 평창으로 철수했다. 2월 11일 중공군은 제4차 공세(2월 공세)를 감행했고, 연대는 횡성의 섬강 일대에서 중공군 제197사단과 혈전을 벌였다. 이후 국군은 공세로 전환하여 3월 7일부터 리퍼작전을 전개했고, 연대는 제3군단에 배속되어 3월 말 38도선 상의 현리 일대까지 진출했다.
4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고, 연대는 4월 20일까지 강원 인제군 한계리 일대까지 진격했다. 4월 22일 시작된 중공군 제5차 공세(4월 공세) 때 연대는 인제의 한석산, 가리봉 일대에서 북한군 제6사단을 물리쳤다. 5월 16일 중공군 제5차 공세(5월 공세)가 시작되었다. 사단의 유일한 보급로인 오미재 고개가 차단당한 가운데 북한군 제5군단의 공격을 받자 장병들은 장비를 파괴하고 방태산으로 후퇴하여 하진부리로 철수했다.
현리전투 결과로 5월 25일 제3군단이 해체되고, 제3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연대는 양양, 고성 일대에 배치되어 10월 19일까지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했다. 박 하사는 전투마다 선두에 나섰고, 10월 중순 실시한 보급로 경계작전 간에도 앞장서다가 적의 기습을 받아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10월 25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만식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은 전사자 명비(027-ㄴ-07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