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만식(朴萬植)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0958
  • 전몰일자 : 19500827

공훈사항

박만식 일병은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도 불구하고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49년 10월 말, 강원도 춘천의 제7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연대는 화천-춘천 축선에 대한 방어임무를 담당했다.
북한군 제2사단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약 1시간에 걸친 공격준비사격으로 아군 방어진지를 무력화한 다음에 SU-76자주포(당시 전차로 오인)를 앞세우고 공격해 왔다. 박만식 일병이 소속된 제7연대는 적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고 곧바로 전방지역 방어지역에 투입되었고, 이후 소양강이라는 지형의 이점을 이용하여 적에게 타격을 가함으로써 6월 27일까지 적의 춘천 점령을 저지시켰다.
제7연대는 6월 27일에 춘천에서 철수하여 원창고개를 거쳐 6월 30일에 원주로 철수했고, 7월 1일에 충주로 이동했다. 이후 7월 31일까지 음성-괴산-문경-점촌 –함창 축선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지연하다가 8월 3일에 낙동강을 건너 용기동 일대의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한편 북한군은 8월 5일에 낙동강을 건너 공격하였고, 8월 10일 새벽 3시에 낙동강의 지류인 위천을 도하하여 아군을 공격했다. 이에 사단은 8월 17일에 매봉산-365고지로 철수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곳에서 박만식 일병이 소속된 제7연대는 강력히 저항하여 치열한 전투를 치르다가 8월 21일에 신령 북방의 고지군으로 철수하여 배수진을 쳤다. 이러한 철수과정에서 북한군이 무혈점령한 신녕 북방의 화산을 탈환하기로 했다. 화산은 신녕 일대를 방어하는데 매우 중요한 지형이었다. 제7연대는 8월 25일 오전에 신녕에 도착하여 바로 공격을 개시했다. 다음날인 8월 26일에는 용암산을 탈취해 이를 발판으로 최종 목표인 화산(828고지)을 공격했으나, 적의 완강한 저항에 직면하여 총격전만 반복했다.
박만식 일병이 소속된 제7연대는 몇 번에 걸친 공격에도 화산을 탈환하지 못했으나, 8월 27일에 기습적인 야간공격으로 탈취했다. 당시 북한군은 당황하여 별다른 저항도 하지 않고 분산되어 철수하였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만식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1판-7면-22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9-ㄴ-07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