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만식(朴萬植)

  • 군별 : 육군
  • 계급 : 상병
  • 군번 : 0334953
  • 전몰일자 : 19510205

공훈사항

박만식 상병은 강원도 삼척군 근덕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선으로 철수를 거듭하고 있을 때인 1950년 7월 15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수도사단에 배치되었다.
당시의 전황은 북한군 제12사단이 8월 9-12일 사이에 청송-죽장-기계 축선으로 공격하여 기계와 포항을 점령하였다. 박만식 상병은 16일 안강 북쪽 양동리 지역으로 투입되어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면서 투혼을 다해 기계를 탈환하였다. 북한군의 9월 공세가 시작되자, 박 상병과 장병들은 9월 4일 경주 북방에 있는 호명리와 곤제봉, 무릉산 일대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여 북한군을 물리쳤으며, 9월 말 양양까지 진격하면서 38도선을 회복하였다. 이어 10월 1일 하조대 부근 38도선을 돌파해 북진작전에 돌입한 후 10월 10일에는 원산을 점령한 후 함경북도 길주까지 진격하였다. 박 상병과 장병들은 12월 14일 함흥과 흥남으로 철수하던 중 벌어진 치열한 교전에서 북한군을 저지한 후 17일 흥남에서 묵호항으로 해상 철수하였다.
박만식 상병과 사단 병력은 중공군의 제3차 공세를 맞아 1951년 1월 3일 양양 남쪽에 있는 원포리 일대에 진지를 점령한 후 북한군과 벌어진 치열한 교전에서 사력을 다해 싸웠다. 이어 2월 3일 강릉 방향으로 위력수색을 하던 중 임계 일대에서 적 유격부대를 발견하고 야간에 포위망을 압축한 후 기습공격을 감행해 수백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세웠다. 이어 4일부터 사단은 강릉 동남쪽 7㎞ 전방까지 진출한 후 북한군의 측방을 공격해 들어갔다. 이때 박만식 상병과 사단 일부 병력은 퇴각하는 북한군을 추격해 소탕하고 강릉을 점령하였다.
박 상병은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신념만큼은 누구보다도 투철했던 박만식 상병은 1951년 2월 5일 삼척 부근 전투에서 도주하던 북한군의 총탄을 맞고 푸른 청춘의 꿈을 남겨둔 채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만식 상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13판-7면-23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4-ㄹ-05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