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만승(朴萬昇)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5647
  • 전몰일자 : 19500915

공훈사항

박만승 일병은 경상북도 대구시 신암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중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카투사(KATUSA) 병으로 분류되어 미 제1기병사단에 배치되었다.
박만승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8월 중순, 미 제1기병사단은 대구로 향하는 1번 국도를 통제할 수 있는 주요 감제고지에 배치되어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고 있었다. 당시 북한군 제10사단 주력이 8월 12일부터 14일까지 현풍 서북쪽 용포로 도하하려 했으나 미 제7기병연대에 의해 격퇴되었고, 성주 방면의 북한군 제3사단 예하 제7연대는 8월 9일 새벽 3시에 왜관 남쪽 미 제5연대 정면에서 도하하여 금무봉(268고지)을 점령했으나, 10일에 사단 예비인 제7기병연대의 반격으로 퇴각했다.
북한군 제3사단 1개 연대는 제105전차사단의 지원하에 8월 14일에 국군 제1사단 제15연대 정면을 기습적으로 도하하여 미 제1기병사단과의 전투지경선 사이로 공격하여 8월 15일에 왜관 동북쪽 303고지를 점령했다. 이 고지는 왜관 일대의 철도, 도로 등에 대한 가장 중요한 감제고지였다. 박만승 일병이 소속된 제5기병연대는 8월 16일에 반격하여 8월 17일에 이 고지를 탈환했다. 이후 계속되는 북한군의 공격을 맞아 치열한 혈투 끝에 303고지를 지켰다.
미 제1기병사단은 8월 31일부로 국군 제1사단으로부터 다부동지역을 인수하여 대구로 향하는 주요 축선인 1번 국도 축선과 다부동 축선을 동시에 담당했다. 북한군은 9월 2일 오후 6시를 기하여 대구 북방에서 총공세를 실시했다. 북한군 제3사단이 사단을 우회하여 공격하자, 제5, 8기병연대는 칠곡 북쪽의 188고지-174고지-401고지 선으로 철수하고, 제7기병연대는 동촌으로 철수하여 사단 예비가 되었다.
박만승 일병이 소속된 제5기병연대는 188고지-203고지-174고지 선에서 9월 8일부터 14일까지 북한군 제3사단과 혈투 끝에 격퇴하여 대구를 지켜냈다. 그는 언어소통은 미흡했지만 항상 미군 장병들과 함께 용감하게 싸워 전우애를 과시했다. 그러던 그는 9월 15일에 반격작전을 준비하던 중 적 침투조를 발견하고 소탕작전을 실시하다가 적의 총탄에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고 박만승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32면-1713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9-ㄹ-06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