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만수(朴萬洙)

  • 군별 : 해군
  • 계급 : 하사
  • 군번 : 8111224
  • 전몰일자 : 19500721

공훈사항

박만수 하사는 충청남도 천안군 횡덕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조국의 바다를 수호하겠다는 일념으로 1949년 3월 31일 해군에 입대했다. 박 하사는 하사관반 교육을 받고 1947년 2월 8일 창설된 포항기지에 배치되었다.
해군은 1949년 6월 1일 진해특설기지를 진해통제부로 개편하는 한편 각 해군 기지도 해군경비부로 개편했다. 인천, 목포, 묵호 기지가 이날 경비부로 승격되었고, 부산과 포항, 군산 기지는 1950년 4월 15일 경비부로 승격되었다. 각 경비부는 육상과 해상으로 경비 책임구역을 담당했는데, 포항경비부는 경상북도 일대의 항만과 해상 경비 및 통제 임무를 수행했다. 6·25전쟁 발발 당시 포항경비부는 예하에 박 하사를 포함한 병력 209명을 보유하고 있었다.
6·25전쟁 발발 이후 북한군 게릴라가 영덕과 영해 지역을 잇는 선까지 남하하여 경상북도 포항 북방 구암산 일대에서 후방교란을 하자 포항 경비부는 육상전투단을 편성하여 게릴라 남진 저지 및 토벌에 들어갔다. 육상전투단은 7월 1일부로 포항경비부에 배속된 묵호경비부 대원들과 포항경비부 기지 근무 장병들을 기간으로 하여 7월 3일에 창설됐다. 이 부대는 최초 중대 규모로 일명 ‘용호대(龍虎隊)’라 불리기도 했는데, 7월 9일 진해에서 증원 병력이 도착함에 따라 대대 규모의 ‘강호대(姜虎隊)’로 증편되었다.
육상전투단은 7월 11일부터 17일까지 구암산지구 전투를 전개하여 구암산 일대, 경주, 영천 구룡산, 죽장, 비학산 등지에서 게릴라들을 무찔렀다. 그리고 합덕리와 정자리 일대에서 미군 항공단의 지원을 받아 북한군 게릴라를 공격, 북한군 161명을 사살하고 적의 주둔지를 완전히 점령했다.
구암산지구 전투를 끝낸 포항경비부의 육상전투단은 7월 17일부터 8월 11일 포항경비부가 감포로 철수할 때까지, 포항·영덕 일대에 침입한 적과 전투를 이어가며 적의 남진을 지연했다. 이 과정에서 박만수 하사는 7월 21일 경북 영덕에서 북한군과 교전하다가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만수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그의 유해(19묘역-8판-14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91-ㄹ-02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